사진의 장르를 구분하는 방법에는 상당히 여러 가지가 있다. 찍힌 피사체에 따라 나누기도 하고(풍경사진, 인물사진 등), 용도에 따라 나누기도 하고(상업사진, 순수사진 등), 스타일이나 역사에 따라 나누기도 하고(근대사진, 모더니즘 등), 찍는 방식에 따라 나누기도 하고(항공사진, 수중사진 등), 심지어 장비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필름사진과 디지털사진, 35mm와 파노라마 등). 아마추어의 영역에서는 필요에 따라 이런저런 분류방식을 다양하게 동원하곤 하지만 프로 사진에서는 대체로 용도와 작업방식에 따른 분류가 가장 일반적인 듯하다. 아무래도 먹고사는 일과 관련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인물사진, 풍경사진, 정물사진과 같이 일반적인 구분법은 잘 쓰이지 않는데, 이러한 프로 사진에서의 장르 구분을 초보자들은 낯설어하고 그 결과 사진이라는 장르에 대해 편협하거나 왜곡된 견해를 갖게도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를 TV 프로그램에 비유해보면 보다 이해가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누다 보니까 일반적인 방식과는 차이가 좀 나버렸는데, 어차피 세상의 모든 분류는 완전할 수 없는 것이니 'TV 프로그램에 비추어보기'라는 독특한 시도쯤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1. 다큐멘터리 사진
(가) 보도사진 = TV 뉴스, 시사 프로그램
포토저널리즘이라고도 한다. 사실성, 객관성, 시의성 내지 속보성, 그리고 미안하지만 일회성이 강하다. 있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출판사진과 함께 다큐멘터리 사진의 양축을 이룬다. 매일같이 바쁘게 '근무'해야 한다. 예술작품이기는 쉽지 않고 매체(미디어)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갖는다. 실험성은 당연히 배제되며 기본 테크닉에 충실한 것이 우선이다. 그보다는 무엇을 찍었느냐가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어지간해선 남기도 튀기도 어렵고, 적당한 기준치만 넘으면 된다. 주로 일간지와 주간지에 실리지만, 월간지용 보도사진의 비중도 상당히 높다. 사람들에게 별로 환영받지는 못하지만 대신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는 쉽다. 프리랜서로 일할 수도 있겠지만 정보를 가지고 쫓아다니는 것이 중요하므로 언론사 직원으로 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진전공자는 사실 많지 않고(특히 일간지와 주간지) 인문계 출신들이 많다.
이 장르의 한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진기자들은 구원의 빛을 쫓듯 포토스토리 형식을 선망하는데, 정작 제대로 된 포토스토리는 월급 받고 근무하는 사진기자들이 아닌 프리랜서 사진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며 일간지가 아닌 주간지나 월간지에 실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결과물에는 르뽀사진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기도 하고, 혹자는 이것을 포토저널리즘의 전형으로 여기기도 한다. 확실히 르뽀사진은 모든 면에서 보도사진과 출판사진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것이 사실이다. TV 프로그램에 비유해보자면 사진기자들이 찍는 보도사진은 뉴스에, 프리랜서 사진가들의 르뽀사진은 시사 다큐멘터리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칼같이 구분하기가 힘든 것이,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의 대다수는 사진기자 출신이며 현실적 필요에 따라 두 분야를 계속 오가는 일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월간지 작업의 경우가 그렇다.(굳이 이런 구분을 동원하는 이유 중의 하나를 솔직히 밝히자면, 작품성이나 깊이를 찾아보기가 거의 불가능한 일간지, 주간지 사진기자들이 자신을 최고의 포토저널리스트, 진실만을 추구하는 진정한 사진가라고 착각하는 꼴이 별로 아름답지 못해보여서이다. 아마도 그들은 사실 fact과 진실 truth을 혼동하거나 둘의 차이를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보도사진계의 대표적인 사진집단/에이전시로는 매그넘이 압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으며, 프랑스에 거점을 두고 있는 라포도 유명하다. 물론 AP, 로이터 등 통신사들도 많은 몫을 담당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질이 아닌 양적인 차원에서만이다. 매체로는 [라이프]가 대표적이었지만 여러 해 전에 폐간되었다.
(나) 출판사진 = 교양 다큐멘터리
생태사진, 역사사진, 여행사진, 공연사진, 건축사진 등, 쉽게 말해 월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단행본 본문에 실리는 류를 말한다. 당장 특정매체에 실릴 것을 의도하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사진자료를 쌓아가는 작업의 경우 따로 떼어 '아카이브 사진'이라 부르기도 한다. 보도사진과 함께 다큐멘터리 사진의 양축을 이룬다.(시사 다큐, 휴먼 다큐만 다큐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포토저널리즘만이 다큐사진'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한 마디 덧붙여두는 것이다.) 보도사진에 비해 훨씬 긴 호흡과 전문성을 요구받는다. 해당분야에 관한 지식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없이는 아무리 기술과 장비가 좋아도 어렵다. 작업은 긴 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며, 적어도 몇 년은 해야 기본수준에 오를 수 있다.
결과물 또한 보도사진과 달리 일회적이지 않아서, TV 교양다큐가 몇 번쯤 재방송되는 것은 기본이고 잘 만든 것은 소장용 DVD로도 꽤 팔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따라서 포토스토리 등으로 게재될 뿐아니라 라이브러리(아카이브)로 구축되어 스톡 포토의 형식으로 꾸준히 판매되곤 한다. 성격 역시 예술작품과 매체의 가장 애매한 중간지점에 자리잡는다. 작업하기도 어렵고 수입도 변변찮지만 보람은 크며 어딜 가나 무난한 반응을 얻기도 쉽다. 주로 월간지나 단행본에 글과 함께 실린다. 프리랜서 개인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고 집단을 이루어 활동하기도 하며 월간지 직원으로 일할 수도 있다. 프리랜서일 경우 포토에이전시와 계약을 하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역시 사진전공자일 필요가 적으며 해당분야 전공자인 편이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 이런 류의 사진을 주로 싣는 매체로 명실공히 정점에 있는 것은 월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며, 그 외에 수많은 전문지가 있다.
2. 상업 사진
(가) 광고사진 = 오락, 예능 프로그램
제품사진, 패션사진, 프로필사진 등. 철저히 그 자체가 상품인 분야. 보도사진 = TV 뉴스와 정반대의 성격을 갖는다. 기념사진과 함께 상업사진의 양축을 이룬다. 흥미, 아이디어, 감성, 자극, 유행 등이 최고의 덕목인 분야. 잘하면 큰 돈을 만질 수 있지만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고 성공하기 어렵다. 성공했다 하더라도 계속 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전혀 아니며 그 일을 하고 있는 한 피말리는 무한경쟁은 숙명이다. 끊임없이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아이디어와 감성을 제련해야 한다. 그러나 부와 인기를 거머쥐었다 해도 존경받거나 오래 남기는 힘들며, 아무리 예술적이어도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는 성공하기보다 더 어렵다. 자신이 찍는 사진이 예술작품이나 매체가 아닌 상품임을 자인하는 게 훨씬 속편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전공자가 아니고는 발을 들여놓기가 가장 힘든 '텃밭' 중 하나. 주로 스튜디오 단위의 그룹으로 움직인다. 패션사진 쪽의 대표적인 매체로는 [보그]와 [하퍼스 바자]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나) 기념사진 = 연속극
웨딩사진, 베이비포토, 졸업사진, 증명사진 등. 사실 '기념사진'이라는 단어를 장르구분 용어로 쓰는 경우는 드물다. 보다 익숙한 용어는 '사람을 찍는다'는 공통점에 의거해서 모델사진, 프로필사진과 한데 묶은 '인상사진'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유명인이나 모델을 최대한 화려하게 찍는 것과 일반인의 기념할 만한 모습을 찍는 것에는 여러 모로 차이가 있어보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구분해보았다. 말 그대로 예능 프로그램과 연속극의 차이인데, 찍히는 이가 다소 유명하거나 유명해지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면 창사 몇십주년 특별기획 쪽에,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일일연속극 쪽에 가깝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광고사진과 함께 상업사진의 양축을 이룬다. 맨날 뻔한 것만 다루는 듯하지만 나름 전문 노하우가 없이는 제대로 만들어내기 어렵다.(만일 예쁘고 멋지게 나온 기념사진을 원한다면 1류 포토저널리스트가 아닌 동네 사진관을 찾는 것이 한결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아둘 일이다.) 아무도 우러러봐주지 않지만 누구나 늘 봐준다. 가늘고 길게 가기 가장 좋은 분야이며, 그래서 사진전공자들이 졸업 후 가장 많이 뛰어드는 분야이기도 하다. 애당초 예술성을 포기하고 수용자에게 최대한 맞춰주는 것이 속편한 작업비결이다. 광고사진과 함께 가장 사진전공자 위주의 판이며 스튜디오이긴 하되 광고사진 쪽의 유명 전문 스튜디오가 아닌 동네 사진관의 외형을 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매체는 물론 없다.
3. 미술사진 = 영화
소위 파인아트 사진. 영어 'fine-art'는 때로는 예술로 때로는 미술로 번역되는데, 사진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예술사진'이라는 번역어를 취하는 것을 본다. 세상에 상업사진과 파인아트만 존재한다면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한 분야를 이루고 있는 다큐사진을 고려한다면, 더군다나 예술이라는 개념규정의 난처함을 감안하면 주저되는 호칭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미술사진이라는 번역어를 택하고 싶다. 이쪽의 성격이랄까 생리가 여러 모로 미술에 가까우며 무엇보다도 그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미술계의 일원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사진답지 않은 사진일 수도 있는 것(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특징을 보건대)에 '예술사진'이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나머지 사진은 예술이 아닌 듯 취급한다면 어불성설일 것 같다.
작품 자체의 감상 외에 별도의 실용적 목적을 갖지 않으며 예술성 하나에 목숨을 건다. 그러나 영화가 예술로 분류된다고 해서 모든 영화가 좋은 예술작품은 아니듯 미술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실판단에 따른 분류와 가치판단에 따른 분류가 늘 충돌을 일으키는 분야다. 기술적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컨셉트가 성패를 가른다. 다루는 주제와 소재는 하나 또는 일련의 프로젝트 단위로 적용되며 그것이 끝나면 얼마든지 다른 주제와 소재로 '변신'할 수 있다.
매체로서의 성격도 거의 갖지 않아 어딘가에 실리기보다는 전시회를 열고(극장 개봉) 사진집을 출간하는(DVD 출시와 TV 방영) 식으로 유통된다. 작가로 우러러뵈이기는 쉽지만 정작 작품이 인정받기란 매우 어렵다. 금전적으로도 상당한 어려움을 따르는 것이 보통이므로 교육이나 집필로 생계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그 또한 쉽지는 않지만). 상당히 견고한 이너 서클을 이루며, 사진 전공자 못지 않게 미술 전공자가 많다. 학부에서 사진을 전공하지 못했다면 대학원이나 전문교육기관이라도 대신 나와야 발 딛을 틈이 있다. 대표적인 매체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애퍼쳐 Aperture], 전시공간으로 가장 권위있는 곳은 미국현대미술관(MoMA)을 꼽는다.
4. 산업사진 = 케이블 TV의 전문채널들
의학, 자연과학, 수사 등 특정한 실용적 목적을 갖는 전문분야의 기록사진들. 출판사진과 비슷한 면도 있지만 철저히 기록성, 객관성, 테크닉이 중심이 되며 유통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내가 알아서 찍어놓으면 나중에 여기저기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특정한 필요성에 따라 작업이 이루어지고 활용되는 등 폐쇄적인 유통경로가 특징이다. 보다 전문적인 촬영기술이 요구되어 촬영담당자가 맡는 경우도 있고, 촬영기술보다 해당 분야에 관한 전문지식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 분야의 담당자(의사, 형사, 건축사, 연구원 등)가 직접 촬영을 하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보면 기업 홍보실의 사진담당 직원이나 일간지 사진기자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인 사진 담론에서는 논외로 치부되는 것이 보통이다.
[출처] 프로 사진의 장르들, TV 프로그램에 비추어 이해하기|작성자 유랑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