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장르를 구분하는 방법에는 상당히 여러 가지가 있다. 찍힌 피사체에 따라 나누기도 하고(풍경사진, 인물사진 등), 용도에 따라 나누기도 하고(상업사진, 순수사진 등), 스타일이나 역사에 따라 나누기도 하고(근대사진, 모더니즘 등), 찍는 방식에 따라 나누기도 하고(항공사진, 수중사진 등), 심지어 장비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필름사진과 디지털사진, 35mm와 파노라마 등). 아마추어의 영역에서는 필요에 따라 이런저런 분류방식을 다양하게 동원하곤 하지만 프로 사진에서는 대체로 용도와 작업방식에 따른 분류가 가장 일반적인 듯하다. 아무래도 먹고사는 일과 관련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인물사진, 풍경사진, 정물사진과 같이 일반적인 구분법은 잘 쓰이지 않는데, 이러한 프로 사진에서의 장르 구분을 초보자들은 낯설어하고 그 결과 사진이라는 장르에 대해 편협하거나 왜곡된 견해를 갖게도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를 TV 프로그램에 비유해보면 보다 이해가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누다 보니까 일반적인 방식과는 차이가 좀 나버렸는데, 어차피 세상의 모든 분류는 완전할 수 없는 것이니 'TV 프로그램에 비추어보기'라는 독특한 시도쯤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1. 다큐멘터리 사진

  

(가) 보도사진 = TV 뉴스, 시사 프로그램


포토저널리즘이라고도 한다. 사실성, 객관성, 시의성 내지 속보성, 그리고 미안하지만 일회성이 강하다. 있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출판사진과 함께 다큐멘터리 사진의 양축을 이룬다. 매일같이 바쁘게 '근무'해야 한다. 예술작품이기는 쉽지 않고 매체(미디어)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갖는다. 실험성은 당연히 배제되며 기본 테크닉에 충실한 것이 우선이다. 그보다는 무엇을 찍었느냐가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어지간해선 남기도 튀기도 어렵고, 적당한 기준치만 넘으면 된다. 주로 일간지와 주간지에 실리지만, 월간지용 보도사진의 비중도 상당히 높다. 사람들에게 별로 환영받지는 못하지만 대신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는 쉽다. 프리랜서로 일할 수도 있겠지만 정보를 가지고 쫓아다니는 것이 중요하므로 언론사 직원으로 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진전공자는 사실 많지 않고(특히 일간지와 주간지) 인문계 출신들이 많다.


이 장르의 한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진기자들은 구원의 빛을 쫓듯 포토스토리 형식을 선망하는데, 정작 제대로 된 포토스토리는 월급 받고 근무하는 사진기자들이 아닌 프리랜서 사진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며 일간지가 아닌 주간지나 월간지에 실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결과물에는 르뽀사진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기도 하고, 혹자는 이것을 포토저널리즘의 전형으로 여기기도 한다. 확실히 르뽀사진은 모든 면에서 보도사진과 출판사진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것이 사실이다. TV 프로그램에 비유해보자면 사진기자들이 찍는 보도사진은 뉴스에, 프리랜서 사진가들의 르뽀사진은 시사 다큐멘터리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칼같이 구분하기가 힘든 것이,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의 대다수는 사진기자 출신이며 현실적 필요에 따라 두 분야를 계속 오가는 일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월간지 작업의 경우가 그렇다.(굳이 이런 구분을 동원하는 이유 중의 하나를 솔직히 밝히자면, 작품성이나 깊이를 찾아보기가 거의 불가능한 일간지, 주간지 사진기자들이 자신을 최고의 포토저널리스트, 진실만을 추구하는 진정한 사진가라고 착각하는 꼴이 별로 아름답지 못해보여서이다. 아마도 그들은 사실 fact과 진실 truth을 혼동하거나 둘의 차이를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보도사진계의 대표적인 사진집단/에이전시로는 매그넘이 압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으며, 프랑스에 거점을 두고 있는 라포도 유명하다. 물론 AP, 로이터 등 통신사들도 많은 몫을 담당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질이 아닌 양적인 차원에서만이다. 매체로는 [라이프]가 대표적이었지만 여러 해 전에 폐간되었다.

(나) 출판사진 = 교양 다큐멘터리


생태사진, 역사사진, 여행사진, 공연사진, 건축사진 등, 쉽게 말해 월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단행본 본문에 실리는 류를 말한다. 당장 특정매체에 실릴 것을 의도하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사진자료를 쌓아가는 작업의 경우 따로 떼어 '아카이브 사진'이라 부르기도 한다. 보도사진과 함께 다큐멘터리 사진의 양축을 이룬다.(시사 다큐, 휴먼 다큐만 다큐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포토저널리즘만이 다큐사진'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한 마디 덧붙여두는 것이다.) 보도사진에 비해 훨씬 긴 호흡과 전문성을 요구받는다. 해당분야에 관한 지식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없이는 아무리 기술과 장비가 좋아도 어렵다. 작업은 긴 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며, 적어도 몇 년은 해야 기본수준에 오를 수 있다.


결과물 또한 보도사진과 달리 일회적이지 않아서, TV 교양다큐가 몇 번쯤 재방송되는 것은 기본이고 잘 만든 것은 소장용 DVD로도 꽤 팔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따라서 포토스토리 등으로 게재될 뿐아니라 라이브러리(아카이브)로 구축되어 스톡 포토의 형식으로 꾸준히 판매되곤 한다. 성격 역시 예술작품과 매체의 가장 애매한 중간지점에 자리잡는다. 작업하기도 어렵고 수입도 변변찮지만 보람은 크며 어딜 가나 무난한 반응을 얻기도 쉽다. 주로 월간지나 단행본에 글과 함께 실린다. 프리랜서 개인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고 집단을 이루어 활동하기도 하며 월간지 직원으로 일할 수도 있다. 프리랜서일 경우 포토에이전시와 계약을 하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역시 사진전공자일 필요가 적으며 해당분야 전공자인 편이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 이런 류의 사진을 주로 싣는 매체로 명실공히 정점에 있는 것은 월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며, 그 외에 수많은 전문지가 있다.
  

  

2. 상업 사진

  

(가) 광고사진 = 오락, 예능 프로그램


제품사진, 패션사진, 프로필사진 등. 철저히 그 자체가 상품인 분야. 보도사진 = TV 뉴스와 정반대의 성격을 갖는다. 기념사진과 함께 상업사진의 양축을 이룬다. 흥미, 아이디어, 감성, 자극, 유행 등이 최고의 덕목인 분야. 잘하면 큰 돈을 만질 수 있지만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고 성공하기 어렵다. 성공했다 하더라도 계속 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전혀 아니며 그 일을 하고 있는 한 피말리는 무한경쟁은 숙명이다. 끊임없이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아이디어와 감성을 제련해야 한다. 그러나 부와 인기를 거머쥐었다 해도 존경받거나 오래 남기는 힘들며, 아무리 예술적이어도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는 성공하기보다 더 어렵다. 자신이 찍는 사진이 예술작품이나 매체가 아닌 상품임을 자인하는 게 훨씬 속편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전공자가 아니고는 발을 들여놓기가 가장 힘든 '텃밭' 중 하나. 주로 스튜디오 단위의 그룹으로 움직인다. 패션사진 쪽의 대표적인 매체로는 [보그]와 [하퍼스 바자]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나) 기념사진 = 연속극


웨딩사진, 베이비포토, 졸업사진, 증명사진 등. 사실 '기념사진'이라는 단어를 장르구분 용어로 쓰는 경우는 드물다. 보다 익숙한 용어는 '사람을 찍는다'는 공통점에 의거해서 모델사진, 프로필사진과 한데 묶은 '인상사진'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유명인이나 모델을 최대한 화려하게 찍는 것과 일반인의 기념할 만한 모습을 찍는 것에는 여러 모로 차이가 있어보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구분해보았다. 말 그대로 예능 프로그램과 연속극의 차이인데, 찍히는 이가 다소 유명하거나 유명해지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면 창사 몇십주년 특별기획 쪽에,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일일연속극 쪽에 가깝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광고사진과 함께 상업사진의 양축을 이룬다. 맨날 뻔한 것만 다루는 듯하지만 나름 전문 노하우가 없이는 제대로 만들어내기 어렵다.(만일 예쁘고 멋지게 나온 기념사진을 원한다면 1류 포토저널리스트가 아닌 동네 사진관을 찾는 것이 한결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아둘 일이다.) 아무도 우러러봐주지 않지만 누구나 늘 봐준다. 가늘고 길게 가기 가장 좋은 분야이며, 그래서 사진전공자들이 졸업 후 가장 많이 뛰어드는 분야이기도 하다. 애당초 예술성을 포기하고 수용자에게 최대한 맞춰주는 것이 속편한 작업비결이다. 광고사진과 함께 가장 사진전공자 위주의 판이며 스튜디오이긴 하되 광고사진 쪽의 유명 전문 스튜디오가 아닌 동네 사진관의 외형을 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매체는 물론 없다.
  

  
3. 미술사진 = 영화


소위 파인아트 사진. 영어 'fine-art'는 때로는 예술로 때로는 미술로 번역되는데, 사진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예술사진'이라는 번역어를 취하는 것을 본다. 세상에 상업사진과 파인아트만 존재한다면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한 분야를 이루고 있는 다큐사진을 고려한다면, 더군다나 예술이라는 개념규정의 난처함을 감안하면 주저되는 호칭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미술사진이라는 번역어를 택하고 싶다. 이쪽의 성격이랄까 생리가 여러 모로 미술에 가까우며 무엇보다도 그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미술계의 일원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사진답지 않은 사진일 수도 있는 것(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특징을 보건대)에 '예술사진'이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나머지 사진은 예술이 아닌 듯 취급한다면 어불성설일 것 같다.

 

작품 자체의 감상 외에 별도의 실용적 목적을 갖지 않으며 예술성 하나에 목숨을 건다. 그러나 영화가 예술로 분류된다고 해서 모든 영화가 좋은 예술작품은 아니듯 미술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실판단에 따른 분류와 가치판단에 따른 분류가 늘 충돌을 일으키는 분야다. 기술적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컨셉트가 성패를 가른다. 다루는 주제와 소재는 하나 또는 일련의 프로젝트 단위로 적용되며 그것이 끝나면 얼마든지 다른 주제와 소재로 '변신'할 수 있다.

 

매체로서의 성격도 거의 갖지 않아 어딘가에 실리기보다는 전시회를 열고(극장 개봉) 사진집을 출간하는(DVD 출시와 TV 방영) 식으로 유통된다. 작가로 우러러뵈이기는 쉽지만 정작 작품이 인정받기란 매우 어렵다. 금전적으로도 상당한 어려움을 따르는 것이 보통이므로 교육이나 집필로 생계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그 또한 쉽지는 않지만). 상당히 견고한 이너 서클을 이루며, 사진 전공자 못지 않게 미술 전공자가 많다. 학부에서 사진을 전공하지 못했다면 대학원이나 전문교육기관이라도 대신 나와야 발 딛을 틈이 있다. 대표적인 매체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애퍼쳐 Aperture], 전시공간으로 가장 권위있는 곳은 미국현대미술관(MoMA)을 꼽는다.
  

  
4. 산업사진
= 케이블 TV의 전문채널들

 

의학, 자연과학, 수사 등 특정한 실용적 목적을 갖는 전문분야의 기록사진들. 출판사진과 비슷한 면도 있지만 철저히 기록성, 객관성, 테크닉이 중심이 되며 유통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내가 알아서 찍어놓으면 나중에 여기저기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특정한 필요성에 따라 작업이 이루어지고 활용되는 등 폐쇄적인 유통경로가 특징이다. 보다 전문적인 촬영기술이 요구되어 촬영담당자가 맡는 경우도 있고, 촬영기술보다 해당 분야에 관한 전문지식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 분야의 담당자(의사, 형사, 건축사, 연구원 등)가 직접 촬영을 하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보면 기업 홍보실의 사진담당 직원이나 일간지 사진기자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인 사진 담론에서는 논외로 치부되는 것이 보통이다.

예술이란 진실을 드러내는 거짓이다. - 파블로 피카소

 

카메라는 그 앞에 존재하는 것만을 프레임 안에 담기 때문에 찍혀진 모든 것은 '문맥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모든 사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 순간만을 잘라내는 고유의 특성 때문에 '문맥에서 벗어나' 있다. 심지어 '스트레이트'한 사진들마저도 위의 두 가지 맥락에서 본다면 '진실'이 아니다.

 

'순수 straight'사진에 대한 신화는 사진 역사에서 가장 잘못된 생각 가운데 하나다. 결코 '순수'사진이라고 불릴 만한 사진은 한 장도 없다.(...) 모든 사진에는 단지 스타일과 시각의 차이만 있을 뿐이며, 누가 더 순수하고, 누가 더 회화적인가 하는 논란은 한 마디로 편협한 수작에 불과하다.


-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눈빛, 2005, 100p 및 121p.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1980년대 후반의 한국문학은 '잘 나가는 리얼리즘의 시대'였다. 리얼리즘을 기치로 해서 잘 나갔다는 뜻이다. 그때만큼 문학이 영향력 있는 시절은 다시 오지 않고 있다. 영화에, 음악에, 사진에 손님을 다 뺏겼다. 그래도 유산은 남게 마련이어서 작품은 물론 이론으로도 쌓은 업적이 많은데, 문제는 이론적 업적이 잘 전승되지 않아 똑같은 논제가 지루하게 반복된다는 데 있다. 어쩌면 인류역사 전체가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그때 리얼리즘 논쟁이란 게 있었다. 리얼한 건 좋은데 뭐가 정말로 리얼한 거냐는 거였다. 이를 두고 오간 논쟁은 아예 리얼리즘이라는 용어의 번역에까지 입장 차이를 보여 한쪽에서는 '현실주의'로 또 한쪽에서는 '사실주의'로 받아쓰기도 했었다. 전자는 주로 세상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문제로(내용), 후자는 그것에서 더 나아가 사실주의적인 표현기법의 구사까지로(형식) 리얼리즘의 정의를 달리했던 기억이 난다.

 

놀라운 것은 현재 가장 각광받는 장르의 하나인 사진에서 이러한 인식 차이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누구 말마따나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형상으로만 보아서는 한글이라는 문자를 횡렬로 나열한 것 이상이기 힘든 문학과 달리 범세계적 기호인 실사 이미지를 다양한 방법으로(한 장으로 또는 여러 장으로, 컬러로 또는 흑백으로, 아날로그로 또는 디지털로, 이미지로만 또는 글과 함께 등등)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진은 근본적인 차이를 갖고 있는 탓에, 과거에 나름 비장미 감도는 논쟁거리였던 것이 이제 와서는 허탈한 블랙코미디에 그치고 있다는 정도가 질적 차이랄까.

 

딴은 이해할 여지도 있다. 사진을 시작하고 나서 한동안은 사실주의적 기법 이상을 구사하기가 쉽지 않고(글쓰기는 어려서부터 필수로 배우지만 사진 찍기는 전혀 그렇지 않으므로 기초를 다지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린다), 초보단계에서 하나둘 접하게 되는 '걸작'이 거의 틀림없이 20세기 전반기의 클래식 작품들이기 쉽다는 이유에서도 사실주의적 기법에 먼저 익숙해질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것만이 온세상이라는 착각을 그 후에도 계속 유지한다면, 더구나 꽤 사진을 찍어왔다는 사람마저 "사진이란 모름지기 눈에 보이는 것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방식대로만 찍어내는 것이며 그로부터 어떠한 변형을 가하는 짓도 죄다 반칙"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리하여 합성이나 강한 조작은 물론 (조작이 아닌) 후보정도, (편광, ND, 그라데이션 등) 어떠한 필터의 사용도, (찍기 전의) 피사체에 대한 여하한 변형도 모두 용서할 수 없는 짓거리라는 식의 주장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놓는다면 실로 딱한 일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면 차라리 몰라서 그러나보다 할 수도 있겠지만.

 

사진은 미메시스가 아니다. 그림과 달리 눈에 보이는 것을 담아낸다는 이유만으로 사진을 있는 그대로의 반영이라고, 혹은 그래야만 진실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미학적 소양은 고사하고 사진에 대한 최소한의 기술적 이해마저 부족함을 자백하는 노릇일 뿐이다.

 

무엇을 찍을 것인지를 사진가 스스로 정한다는 점에서도, 무엇을 찍든 간에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구성한다는 점에서도 일단 사진은 별로 객관적이거나 수동적인 장르가 아니라는 점은 20세기 다큐멘터리 영화의 역사가 이미 다 입증해줬다. 이에 대해서는 영화의 시대였던 90년대에 벌써 충분한 숙의가 있었으므로 지루하게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진실(혹은 범주를 더 좁혀 현실)이란 감각기관에 수용되는 그대로를 모사한다고 드러나는 게 아니라는 점 또한 80년대 리얼리즘 논쟁을 통해 다 얘기됐으므로 마찬가지다.

 

나는 오히려 사진이라는 장르의 기술적 특성상 왜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단순반영하려 해도 그럴 수가 없는지를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가장 기초적인 것 같지만 정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여기인 것 같아서다. 결론을 질러 밝혀둔다. 사진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찍는 것이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할 수조차 없다. 사진은 눈에 보이는 것을 응축적으로 재구성해내는 '시각적 통찰'이다. 왜 그런지 하나하나 짚어보자.

  

   
1. 카메라와 육안의 구조적 차이

 

"카메라가 사물을 보는 방식을 사람이 이해해야 한다"는 명언이 있다. 이 말은 그저 낭만적인 비유가 아니다. 눈으로 보는 그대로 찍으려 해도 그러기 힘든 까닭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화각이다. 표준렌즈로 찍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풀프레임 바디에선 50mm, 1.5배 크롭바디에선 35mm, 6x6 중형카메라에선 100mm로 찍어야 눈에 보이는 것과 유사한 화각(45도 가량)이 나오는데, 이렇게만 찍는 사람은 흔치 않다.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은 제아무리 사실주의적 기법을 고수하는 척해도 착각 속에 빠져있는 것이다.

 

우선 망원렌즈를 예로 들어보자. 멀리 있는 것을 당겨서 찍는 것이므로 가까이 다가가서 본다면 결국 똑같지 않냐고 할지 모른다. 그렇지가 않다. 당기는 만큼 원근감도 압축되고 화각도 좁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광각일 경우 훨씬 커진다. 초광각으로 갈수록 원근감, 화각, 쐐기현상에 이르기까지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광경이 뷰파인더 안에서 펼쳐진다. 하물며 어안렌즈, 매크로렌즈, 쉬프트렌즈, DC(디포커스)렌즈 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진실'을 담기 위해 브레송처럼 오로지 표준렌즈만을 써야 할까? 그렇게 하면 해결이 되는 걸까?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심도다. 디지털 컴팩트는 좀 낫지만 대부분의 카메라와 렌즈는 기본적으로 육안에 비해 심도가 훨씬 얕다. 육안을 고스란히 따라잡으려면 조리개를 참으로 열심히 조여야만 한다. 그런데 어쩌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은 클래식 사진들을 꽤 알고 있음은 물론 요즘 매체에 실리는 보도사진 중에서도 그런 것을 종종 본다. 조금이라도 육안에 비해 더 아웃포커스된 이 모든 사진들이 왜곡이고 사실성을 잃은 것이란 말인가?

 

흥미로운 것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단순재현에 별 관심이 없었던 F64그룹은 자신들의 명칭대로 열심히 조리개를 조여댔던 반면 포토저널리스트들에서는 오히려 아웃포커스된 사진을 부지기수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촬영환경의 역동성 등 기술적인 제약이 주된 이유겠지만 그렇다 해도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찍지 않았다는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카메라와 육안의 이러한 구조적 차이 외에도 아직까지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기술적 한계가 여럿 있다. 우선 감도다. 사람의 눈을 ISO로 환산하면 6400 정도가 된다고 한다. 필름은 물론 현재 나와있는 최고의 디지털 바디로도 노이즈 하나 없고 해상력 손상도 없는 ISO 6400의 결과물을 뽑아내주지는 못한다. 어두운 곳일수록 눈에 보이는 대로의 결과물은 애당초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계조범위의 문제도 있다. 디지털이 이쪽에 약한 거야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필름도 실은 그다지 나을 게 없다. 단지 네가티브는 명부계조, 슬라이드는 암부계조에 각각 강할 뿐이며 전체적인 다이내믹레인지를 따지면 육안에 필적하기에는 모두 한참 부족하다. 참고로 사람의 눈이 갖는 계조범위는 무려 16스탑 가량이며, 보통의 DSLR들은 그보다 한참 모자라는 7~9스탑에 불과하다. 필름 시절에 괜히 현상 및 인화시간 조정, 확대기 필터 선택, 닷징과 버닝 등을 통해 톤과 콘트라스트를 조절했던 게 아니며, 야경에서의 인물사진에 괜히 슬로우싱크로 기법을 구사하는 게 아닌 것이다.

 

화이트밸런스 역시 악명이 높다. 필름 시절에는 반쯤 포기하고 넘어가다가 디지털 시대가 되자 까다롭게 따지게 된 것인데, 눈에 보이는 대로의 색을 재현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오토로 찍으면 될 것 아니냐"는 사람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이다. 또한 눈으로는 색수차, 비네팅, 플레어(고스트와 포그), 블루밍같은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들은 후보정을 공갈 쯤으로 치부하는 미메시스론자들의 상식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드러낸다. 후보정을 하는 게 왜곡인 것이 아니라 거꾸로 어느 정도 후보정을 해야 눈에 보이는 대로에 가까와지는 것이다.

   

   
2. 사진이라는 장르의 특성

 

표준렌즈만 쓰고, 조리개를 한껏 조여서, 감도나 계조 따위가 문제시되지 않을 상황에서만 사진을 찍으면 우리는 드디어 미메시스 사진의 전당에 입성한 것인가? 글쎄. 동영상이 아니라 사진인 한 피해갈 수 없는 중요한 걸림돌 하나는 셔터스피드다. 상당한 속도로 움직이는 것을 정지시켜놓는 것 자체가 눈으로 보는 그대로가 아니다. 날아다니는 박각시나방이나 꽃등에의 날개는 육안으로 아예 살필 수도 없다. 좀 덜 빨리 움직이는 피사체라 해도 사태의 본질은 마찬가지다.

 

여기서 사진이라는 장르의 핵심적인 특성이 부각된다. 변화하는 것, 움직이는 것, 흐르는 것을 고정시켜놓는다는 점.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로부터의 일탈. 이것은 이미 현실이 아니다. 그림이라면 사람들은 현실성을 아예 따지지도 않으며, 동영상이라면 현실로 종종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진이기 때문에, 현실 그대로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비현실도 아닌 중간자적 속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사진은 고유의 호소력을 발휘하고 효용성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중간적 속성을 '있는 그대로를 베끼는 것'과 혼동하여 미메시스론을 꺼내든다면, 그것은 내 자식이니까 나와 똑같아야 된다는 말만큼이나 멍청한 소리에 다름 아니다.

 

정반대로 저속셔터(장노출)를 사례로 들어본다면 이해는 더 빠르다. 파도를 안개처럼 만들 수도 있고 복잡한 백주대로를 텅 빈 거리로 만들 수도 있으며 별의 움직임을 자동차 불빛궤적처럼 만들 수도 있다. 고속셔터보다도 더욱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사실 그대로의 이미지로부터 멀다. 그러나 촬영기법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자. 아주 중요한 문제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연출이 큰 문제인 모양이다. 보도사진이라면 중요한 얘기다. 이 분야에서 안한 것을 한 것처럼 연출하는 것은 방법은 물론 목적과 결과에서도 거짓말과 동일하므로 진실성에 치명타를 입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가장 그런 짓을 많이 해왔고 그래서 치명타를 가장 많이 입어왔던 분야도 또한 보도사진이다. 보도사진가들이 가장 부도덕하다는 뜻이 아니라 보도사진에서 연출이 가장 문제시된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진실성이 중요한 교양다큐사진(내셔널 지오그래픽 류)만 하더라도 사정은 많이 달라진다. 애초에 연출할 것도 별로 없거니와 해봤자 어제 했던 것을 오늘 한 번 더 하거나 사진 찍기 좋게 여건을 구비해놓고 원래 할 것을 그대로 하는, 즉 왜곡이 아닌 강조의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생태사진같은 경우 여건을 구비한답시고 오히려 자연훼손을 일삼는 작자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이런 것은 연출이 아닌 형법의 문제다. 연출여부와 위법여부를 뒤섞지만 않는다면 대부분의 사진장르에서 연출이 논란의 중심에 설 여지는 희박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연출 안하는 것을 자랑으로 아는 일부 사진기자들조차 포트레이트 사진을 찍을 때는 당연히 적절한 연출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하나만 물어보자. 사람을 찍을 때 "이쪽을 봐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동네 풍경을 찍을 때 화분 위치를 조금 옮겨놓는 것이 대체 뭐가 다르단 말인가? 아마도 그들이 말하는 연출의 정의는 대단히 특정한 것인 모양인데, 그런 전문용어라면 자신들끼리나 주고받으면 될 일이 아닐지.(보도사진에서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연출도 합성도 후보정도 않고 구사하는 거짓말이라는 점을 짚어둘 필요가 있을 듯하다. 캡션 한 줄만으로, 혹은 구도나 셔터찬스만으로 얼마나 왜곡이 가능하며 실제로 그렇게 해왔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거짓말과 강조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 중간에 과장이라는 애매한 영역이 있긴 하나, 소통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감안하면 거의 정리가 된다. 재래시장 상인의 과장, 술 마시면서 농담으로 오가는 과장을 뭐랄 사람은 아무도 없는 반면 학자가 연구성과를 과장발표한다면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심지어 익살어린 선의의 거짓말도 받아들여지는 것이 세상이다. 사진으로 치면 디씨인사이드의 풍자·코믹사진들이다. 그만큼 세상도 다양하고 사진도 다양하다. 이 모두에다 대고 "용납할 수 없는 왜곡"이라며 혼자 엄격한 표정을 짓는다면 가망 없이 따분한 성격의 소유자일 뿐이다. 지금은 페드로 마이어 류의 합성 다큐를 놓고 논쟁하기에도 바쁜 시대다.

   

   

3. 공인된 촬영기법들


꼭 짚고넘어갈 것이 있다. 흑백사진이라는 것 자체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는 점이다. 색맹이라도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표준렌즈만 쓰고 플래쉬도 안 쓰고 심지어 로우앵글도 구사하지 않았다는 브레송이지만, 그가 흑백사진가인 한 '사실적으로' 찍은 사진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브레송을 비판하려는 엄청난 야욕을 가진 것은 전혀 아니지만 말 나온 김에 한 번 더 예제로 삼아보자. 그토록 눈에 보이는 대로만 찍고자 노력했다면 세로구도는 왜 구사했는가? 사람의 눈은 위아래가 아니라 양옆으로 달려있다. 소위 가로본능이다.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 그는 로우앵글의 구사조차 피했다. 앉거나 엎드려서 찍는 것을 부자연스럽다고 판단해 기피했다면 세로구도로 찍는 것도 마찬가지였어야 앞뒤가 맞는다. 실제로 데이비드 알란 하비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사진을 가로로 찍는다고 한다.

 

브레송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사진계에서 너무나도 확고하게 공인된, 있는 그대로의 재현이 아니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몇 가지 촬영기법이 있다는 말이다. 우선 흑백은 사진의 발명 이후 오랜 시간(약 100년)동안 컬러사진술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어쩔 수 없었던 측면도 있지만 더불어 앞서 말했던 바 현실과 비현실의 중간자적 속성을 강조한다는 측면도 있다. 이를 빼놓으면 컬러시대로의 완전한 진입이 이루어진 7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흑백사진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흑백옹호자들이 말하는 단순화니 빛의 미학이니 집중력이니 등등이 다 '좀 더 비현실적이게 보이는' 흑백사진의 시지각적 속성을 이러저러하게 표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세로구도 역시 사진계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미메시스론자 중 어느 누구도 이를 문제 삼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타협은 업자들끼리의 것일 뿐, 한 발짝만 벗어나있는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세로로 찍어서 상영하는 영화를 단 한 편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그나마 흑백영화는 아주 가끔이라도 등장하고 있다. 세로구도의 미메시스적이지 않은 성격을 인정할 요량이라면 남은 것이 조금 더 있다. 6x6 정사각형 판형이나 각종 파노라마 판형 역시 같은 이유에서 받아들이거나 같은 이유에서 거부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브레송 얘기를 한 번만 더 해야겠다. 인공조명의 문제다. 어떤 이는 일체의 인공조명을 거부하는 반면 어떤 이는 주인공을 더 확실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대낮에도 플래쉬를 쓴다. 또 어떤 이는 플래쉬는 안 쓰지만 반사판은 쓴다. 이 중 누가 옳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절대적 기준이 될 만한 '있는 그대로의 밝기와 색감'이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플래쉬를 터뜨리든 전등을 하나 더 켜든 모든 인공조명은 어디까지나 '인공'일 뿐이다. 나아가 자연광이라는 것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하늘의 색만 하더라도 오전·오후의 태양 반대쪽은 파랗지만 태양 쪽은 훨씬 옅거나 거의 백색이며 일출·일몰시엔 붉고 그 직전과 직후는 감색인데 밤하늘은 검다. 이에 따라 피사체의 색감도 변하는 것은 물론이다. 심지어 사람마다 시력뿐 아니라 빛과 색에 대한 분별력도 꽤 다르다는 과학상식에까지 이르게 되면 남는 것은 미궁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사실성'의 발자국 뿐이지만, 이쯤에서 자제하기로 하자. 그 이상의 미학 및 인지과학적 논의가 불교의 공(空) 사상에까지 가닿지 말란 법도 없으므로.


이 모든 가변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든 적극적으로 활용하든 그것은 사진가의 자유다. 연출에서와 마찬가지로 거짓말이 아닌 강조의 문제인 것이다. 정말 들어주기 힘든 것은 일체의 연출이나 후보정은 안된다며 목청을 높이는 사람이 플래쉬는 써도 좋다고 말하는 식의 자가당착이다. 사진은 물체와 빛을 함께 찍는 것이라는 기초적인 사실마저 환기시켜주어야 하는 걸까?


거짓말과 강조의 구분법에 동의한다면 얘기할 것이 몇 가지 더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써왔던 다양한 촬영 기법과 장비들이다. 다중노출, 플래쉬를 동원한 여러 가지 기법(리피팅 발광, 플래쉬 블러 등), 주밍, 패닝, 편광필터, 그라데이션 필터 등이 있다. 앞서 언급한 많은 항목과 더불어 취사선택의 문제이지 미메시스론의 율법에 따라 심판을 받을 일은 아닌 것들이다. 여기서 역시 플래쉬 블러는 되지만 편광필터는 안 된다는 둥, 편광필터로 수면반사나 유리반사를 제거하는 것은 되지만 하늘색을 짙게 하는 것은 안 된다는 둥의 좌충우돌이라도 최소한 불식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말의 앞뒤를 맞추는 것이 믿음을 굳건히 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4. 남은 미학적 문제


기술적 한계, 장르의 특성, 관습적 용인 등 여러 이유에서 사진이 단순한 "눈의 연장(延長)"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는 이유는 이상과 같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물음이 있다. 만약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충실한 반영이게끔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일까?


이는 왜 사진을 찍는가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구속되는 정치인, 신작발표회하는 연예인을 쫓아다니며 찍기 바쁜 사람들은 이런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증명사진이나 졸업사진을 찍을 때도, 현금인출기나 고속도로 위에서 센서로 작동하는 자동카메라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단순모사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단순모사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사진에 무엇을 담을지,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달할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프로인지 아마추어인지는 상관이 없다) 이건 미뤄둘 수 있는 물음이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사진은 보이는 것을 찍는다. 그런데 당신은 무엇을 보는가? 그것을 왜 보는가? 그저 저녁에 TV를 보듯 멍하니 보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을 찍어서 남들에게 보여줄 이유가 뭔가?


사람은 적어도 하루의 2/3인 16시간 동안 눈을 뜨고 세상을 본다. 6시간 자는 사람은 3/4인 18시간일 것이다. 반면에 정말 열심히 사진을 찍는 사람도 하루 평균 100~200장 정도일 것이고, 평균 1/100초의 노광을 준다고 가정하면 사진으로 기록되는 시간은 1~2초에 지나지 않는다. 열 몇 시간 중에서 불과 몇 초만을 골라내는 게 사진인 것이다.


모든 것을 변화시키며 끝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당신은 왜 하필 그 짧은 순간을 선택했는가? 왜 그 순간에 집중했으며, 왜 그 순간을 남기려 했으며, 자기 눈앞을 쳐다보기도 바쁜 타인들에게 왜 그것을 보여주고자 하는가? 사진이 미메시스, 보이는 그대로의 단순모사로 족한 것이라는 말은 결국 자기부정일 뿐이다. 성능 좋은 초소형 동영상 카메라를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눈 옆에 달고 살기만 하면 된다. 그보다 충실한 미메시스는 없으며 사진 따위는 세상에 필요치도 않을 것이다.


멀뚱멀뚱 서서 스쳐지나가는 세상사의 표피를 훑어보는 것은 리얼리즘이 아니라 날건달 짓이다. 눈에 보이는 피사체는 진실이 아니라 흩어져 뒹구는 사실의 조각, 이제부터 그려나갈 빛그림의 재료일 뿐이다. 사진적 진실이란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세상의 내면 깊숙이까지 걸어들어갈 때, 그리하여 눈으로 보여지고 마음으로 느껴진 것들을 바탕으로 일정한 시간과 공간이 품은 핵심을 결정화(晶化)하는 데 성공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

필름과 인화지의 유제는 염료(dye)의 일종으로, 온도와 습도에 상당히 민감하다. 우리나라의 장마철이나 한여름 날씨에 아무렇게나 방치해도 괜찮은 물건이 아니다. 직사광선이 비치는 곳, 습도와 먼지가 가득한 장롱 속, 온도가 마냥 올라가는 여름날의 자동차 안은 말할 것도 없다. 흑백보다는 컬러 필름이, 일반용보다는 프로용 필름이, 저감도보다는 고감도 필름이 더 민감하다는 사실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아래의 내용은 필름 제조사들이 권하고 있는 방법으로, 코닥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고 있는 'Storage and Care of KODAK Photographic Materials'(PDF)를 주로 참고했다. 현상하지 않은 필름을 빛에 쬐어서는 안된다는 등의 기초적인 내용은 생략했다.


(1) 구입할 때 확인할 사항


[유통기한]  필름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의도적으로 거친 입자감을 표현하는 등의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면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필름인지 반드시 확인한 후 구입해야 한다. 전문매장이라면 걱정이 없겠지만 일반상점인 경우 가게 주인도 신경을 안 쓰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감도 필름이 유통기한에 더 예민하다. 유통기한이 며칠 지났다고 못 쓰는 것이야 아니지만 기왕이면 새 제품일수록 좋을 것이다.


[보관상태]  전문매장에서 필름을 구입하는 것이 유리한 이유는 또 있다. 제조사들이 권하는 대로 냉장보관을 하기 때문이다. 일반상점 한구석에 뜨뜨미지근하게 진열되어있는 필름은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것이라도 좋은 화질을 보장할 수 없다. 동네 현상소조차 냉장보관을 않은 채 대충 쌓아두고 파는 경우가 많으므로 확인이 필요하다.


(2) 사용 전의 보관방법


[온도]  일반용 필름이라도 포장을 뜯지 않은 상태로 적어도 20도를 넘지 않는 곳에서 보관해야 한다. 흑백필름과 일부 프로용 필름(ex: 코닥 포트라)도 비슷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프로용 컬러필름은 15도 이하의 차가운 곳에서 보관해야 하며, 특히 적외선 필름은 냉동실에 넣어두어야 한다. 대개의 필름 포장지에는 적정 보관온도가 표기되어있는데, 예를 들어 코닥 E100VS는 13도, 후지 벨비아100은 15도, 일포드 델타100은 24도 이하를 지시하고 있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이다. 냉장실도 좋으며 수개월 이상의 장기보관을 위해서라면 냉동실이 더 좋다. 단지 꺼내자마자 바로 쓰지만 않으면 된다. 꺼낸 후 실온에서 얼마동안 놓아둔 다음 쓰는 게 좋은지는 제조사마다(또한 제품마다) 제시하는 기준이 다르다. 코닥의 경우 35mm 필름은 냉장실에서 꺼낸 후 1시간 15분, 냉동실은 1시간 반을, 중형필름은 냉장실 45분, 냉동실 1시간을 제시하고 있으며 벌크형 롱 롤과 다량포장된 대형필름은 좀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아그파는 냉장실에서 꺼낸 후 2시간을 제시하고 있다.


[습도]  온도뿐 아니라 습도도 중요하다. 포장된 상태로도 60%를 넘지 않는 것이 좋으며, 이상적으로는 50% 이하인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장마철에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냉장고 안은 생각보다 그렇게 습도가 높지 않지만, 만전을 기하려면 밀폐용기 안에 제습제를 함께 넣고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화공약품]  각종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노출되는 것 또한 필름을 변질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페인트, 신너, 접착제 등은 필름은 물론 사람에게도 매우 좋지 않다.


[엑스레이]  잘 알려진대로 엑스레이를 쬐이면 화질이 뿌옇게 된다. 한 번이라면 몰라도 여러 번 반복된다면 상당히 나빠질 수 있다. 고감도 필름의 경우 더욱 문제가 커진다. 가급적이면 필름이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하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 좋다. 엑스레이로 인한 화질저하는 현상을 한 다음엔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장기여행시에는 다 찍은 후 그 나라의 믿을 만한 전문현상소에서 바로 현상을 해버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3) 촬영을 시작한 후의 관리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촬영을 시작한 후에는 변질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므로 가급적 빨리 현상하는 것이 최선이다. 일반적으로 필름 제조사들은 건냉한 곳에서 보관하더라도 2주를 넘기지 말 것을 권장하고 있다. 특히 프로용 필름은 더 민감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그날 한 통을 다 찍고 즉시 현상하는 것이 가장 좋으며, 다 찍었지만 바로 현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밀폐용기 안에 넣어 냉장고 안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이때 역시 냉장고에서 꺼낸 후 (습기가 서리는 것을 막기 위해 밀폐용기에 넣은 채로) 1시간 이상 지난 후 현상해야 한다.


(4) 현상을 마친 필름의 보관방법


[온도, 습도, 빛]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점 하나가 현상을 마친 필름은 반영구적인 줄 안다는 것이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으며, 촬영 전과 마찬가지로 15도 이하의 온도와 60% 이하의 습도를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변색·탈색이 진행된다.(적정 온습도를 지켜도 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한결 더디게 만들 수는 있다.) 빛에 노출되지 않는 것 역시 중요한데, 네가티브라면 그럴 일이 잘 없겠지만 슬라이드의 경우 좀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라이트박스나 환등기에 걸어놓을 경우 강한 빛과 열을 동시에 쬐이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라이트박스 위에 오래 방치해두는 등의 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역시 (디지털 이미지를 당장 필요로 하지 않더라도) 필름스캔을 해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스캐너 또한 날이 갈수록 싸고 좋아지고 있어 지금 스캔한 것을 최종본이라 장담할 수는 없으므로 필름 자체의 보관에도 보다 신경을 쓰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필름보관용 제품]  현상소에서 찾아온 상태 그대로 대충 처박아두는 것은 최악이다. 필름보관용 시트에 넣어 바인더에 철을 해서 적절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여러 모로 좋은데, 이때 시트가 중성제품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저가형 제품 중에는 화공약품이 스며나오는 것이 있어 필름의 변질을 오히려 재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매장에서 중성재질로 만든 시트를 구입할 수 있는데, 네가티브용이라면 굳이 투명비닐이 필요없으므로 아예 종이로 된 제품이 습기방지에도 좋으며 슬라이드는 중성 투명비닐로 된 제품을 선택하는 편이 유리할 것이다. 전자로는 독일제 하마(Hama), 후자로는 미국제 프린트파일(Print File)이 유명하다.

* 현재 국내에서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다루었으나 구입이 어려운 것 일부도 정보 차원에서 포함시킴.

* 내가 직접 사용해본 결과가 아니라 코닥·후지 등 필름제조사 공식홈페이지, 필름나라·세기·포토피아 등 필름판매 사이트, SLR클럽 등 사진관련 사이트, 개인 홈페이지, 블로그의 내용을 정리한 것임.

 

제품명

특기사항

공급되는 ISO

품질

공급되는 판형

[KODAK]   미국. 세계최초의 롤필름, 세계최초의 상용 컬러필름 등을 내놓아온 필름산업의 종가. 후지에 비해 차분한 느낌으로 실내사진과 인물사진에 더 좋음. 노란 색조.
<컬러 네가티브>
GOLD   100(GA), 200(GB) 일반용 135
└─ 후지 SUPERIA에 비해 같거나 다소 떨어진다는 평.
COLOR PLUS   200 일반용 135
└─ 최근 제품. GOLD 200에 대응.
MAX   400(GC), 800 일반용 135
└─ 후지 SUPERIA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는 평. 가장 평가가 안 좋은 제품에 속함.
EKTACOLOR PRO   160 일반용 중형
└─ 인물사진에 적합.
ADVANTIX APS 200, 400 일반용 240
SUPRA   100, 400, 800 고급형 135
└─ 구형 제품군으로 본사 단종. GOLD보다는 좋으나 후지 REALA보다는 밋밋함. 그러나 인화시 보정은 더 용이하다고.
PRO IMAGE   100 고급형 135, 중형
└─ SUPRA 100의 대체품. 후지 REALA에 비해 차분하고 은은한 느낌. 더 굵은 입자로 인한 거친 느낌. 인물, 웨딩용으로 많이 쓰여옴.
HIGH DEFINITION   200, 400 고급형 135
└─ 400은 SUPRA 400의 대체품. PRO IMAGE와 특성이 비슷함.
PORTRA   160NC/VC, 400NC/VC, 800 프로용 135, 중형, 대형
└─ 구형 PRO 제품군의 대체품. 이름 그대로 인물사진에 최적화됨(특히 160NC). 후지 NP/PRO에 비견됨. 특히 160VC는 인물사진계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제품.
   ─ 160과 400은 'NC'(natural color. 자연스러운 색감, 더 고운 입자, 낮은 채도와 콘트라스트)와 'VC'(vivid color. 높은 채도, 중간 콘트라스트, 더 높은 해상력) 제품으로 나뉨.
PORTRA T 텅스텐용 100T 프로용 135, 중형, 대형
└─ 2006년 단종됨.
ULTRA COLOR (UC)   100, 400 프로용 135, 중형
└─ 풍경사진에 적합. 매우 생생한 색감과 동시에 차분하고 중후한 느낌. 원색뿐 아니라 중간색도 뛰어나게 재현함.
<컬러 슬라이드>
ELITE CHROME   100(EB), 200(ED), 400(EL) 일반용 135
└─ 인물사진에 적합한 중립적인 색감과 고운 입자.
ELITE CHROME EXTRA COLOR   100 일반용 135
└─ 풍경사진에 적합한 고채도와 고해상도.
KODACHROME   25(PKM), 64(PKR), 200(PKL) 고급형 135
└─ 가장 구형 제품군이나 아직도 코닥 본사에서는 제조되고 있음. 단, 25는 단종.
EKTACHROME   64(EPR), 100(EPN), 100 PLUS(EPP), 200(EPD), 400X(EPL), P1600(EPH) 프로용 135, 중형, 대형
└─ 비교적 구형 제품군. 100 PLUS는 100보다 피부색 재현에 중점을 둔 제품으로, 인물사진에는 좋으나 과학/건축사진에는 부적합. P1600은 EI값이 400이며, 1600까지 증감이 가능한 제품이나 단종됨.
└─ 입자(RMS)는 64, 100, 100 PLUS가 11, 400X가 19, P1600은 EI1600으로 현상시 34.
EKTACHROME E   E100 계열, E200 프로용 135, 중형, 대형
└─ 최근 제품군. 기존 EKTACHROME보다 풍경/여행사진에 더 좋음.
   ─ E100G(extremely fine grain): 입자가 극히 고움(RMS 8). 인물사진에 적합. 구형 E100S(saturated)의 대체품.
   ─ E100GX(extremely fine grain, warm balance): 입자가 극히 고우면서도(RMS 8) 색감이 따뜻함. 흐린날에 적합. 구형 E100SW(saturated, warm balance)의 대체품.
   ─ E100VS(vivid, saturated): 채도와 해상력이 매우 높음. 그러나 후지 VELVIA보다는 낮음. 입자도 비교적 고움(RMS 11). 풍경사진에 적합.
   ─ E200: 채도와 해상력이 가장 낮고 입자도 가장 굵음(RMS 12).
EKTACHROME T 텅스텐용 64T(EPY), 160T(EPT), 320T(EPJ) 프로용 135, 중형, 대형
└─ 160T와 320T는 단종됨.
   ─ RMS는 64T가 11, 160T가 13, 320T가 19.
EKTACHROME INFRARED (EIR) 적외선용 100~200 프로용 135, 중형, 대형
└─ 단종됨. RMS 17.
<흑백>
T-MAX   100(TMX), 400(TMY), P3200(TMZ)

 

135, 중형, 대형
└─ 현재 코닥의 대표적인 흑백필름. 일포드 DELTA에 비해 콘트라스트가 강함. 입자가 곱고 해상력이 매우 높으며(특히 TMX는 일반필름의 2배 수준) 증감현상이 용이하다. 특히 P3200은 800~25000까지 증감현상이 가능하다. 특정한 방법으로 현상할 경우 포지티브로 만들 수도 있다. 'KODAK T-MAX Professional'이라고 표기된 것은 구형이며, 신형은 'KODAK Professional T-MAX'로 표기되어있다.
   ─ 입자와 해상력은 TMX가 RMS 8에 200선/mm(이하, 콘트라스트 1000:1기준), TMY는 RMS 11에 125선/mm, TMZ는 RMS 18에 125선/mm.
PLUS-X (PX)   125   135, 중형
└─ 구형 PLUS-X PAN과 PLUS-X PAN Professional의 대체품. 증감현상에 특히 강함. RMS 10에 125선/mm.
VERICHROME PAN (VP)   125   중형
└─ 본사 단종. 구형 PLUS-X PAN과 특징이 거의 비슷함. RMS 9.
TRI-X   320(TXP: 중형, 대형), 400(TX: 135, 중형)   135, 중형, 대형
└─ 구형 TRI-X PAN(400)과 TRI-X PAN Professional(320)의 대체품. 출시된지 50여년이 지난 클래식 제품군. 한때 가장 유명한 흑백필름 중 하나였으나 T-MAX보다는 떨어짐. 다소 거칠고 고전적임(400이 RMS 17, 320은 RMS 16).
BW400CN 크로모제닉 400   135, 중형
└─ 코닥 최초의 크로모제닉 필름이었던 T400CN의 대체품. 일반필름의 2배 수준의 해상력. 일포드 XP2 SUPER에 비견됨.
PRO FOTO 400BW 크로모제닉 400   135
TECHNICAL PAN (TP)   기본 25. 현상액에 따라 25~320까지 증감현상 가능

 

135, 중형, 대형
└─ 본사 단종. 일반필름의 3~4배에 이르는 극도의 해상력과 확대력을 지닌 산업/과학용 특수필름. 전용현상액인 TECHNIDOL 용액으로 현상시 RMS 5.
HIGH SPEED INFRARED (HIE) 적외선용 ISO가 정해져있지 않음   135
└─ 2007년 단종됨. 적외선 필터와 병용해야만 고유의 특성을 살릴 수 있음. 암실에서 필름을 장전하고 꺼내야 하는 등 특별한 취급이 요구된다. RMS 18.
 
[FUJI]   일본 필름업계의 맏형. 코닥에 비해 화사한 느낌으로 야외사진과 풍경사진에 더 좋음. 입자도 비교적 고운 편. 초록 색조.
<컬러 네가티브>
SUPERIA   100(CN), 200(CA), X-TRA 400(CH), X-TRA 800(CZ), 1600(CU) 일반용 110(200 only), 135, 중형(100 only)
└─ 코닥 GOLD/MAX와 비교하여 100은 동급이고 200과 400은 더 낫다는 평. 특히 200은 컬러 네가티브 중 최고의 가격대성능비와 표준적인 특성을 자랑.
   ─ 입자와 해상력은 100, 200, 400이 RMS 4에 125선/mm, 800은 RMS 5에 125선/mm, 1600은 RMS 7에 125선/mm.
NEXIA APS A200, 400, 800 일반용 240
└─ A200은 RMS 4에 160선/mm, 400은 RMS 4에 125선/mm, 800은 RMS 5에 125선/mm.
REALA (CS)   100 고급형 135, 중형
└─ 코닥 SUPRA/PRO IMAGE에 비해 화사하고 강렬한 느낌. 더 고운 입자로 인한 부드러운 느낌. 원색 재현력이 탁월하지만 과한 파스텔톤이라는 비평도 있음. RMS 4에 125선/mm.
PRESS 800   800 고급형 135
NP   160(NPS, NPC), 400(NPH), 800(NPZ) 프로용 135, 중형
└─ 구형 제품군으로 본사 단종. 코닥 PORTRA에 비견되는 인물사진용 필름. 밝은날 및 스튜디오에서의 인물사진에 더 어울림.
   ─ NPS(saturation): 채도가 좀 더 높으며 인물사진 전용. 약간의 마젠타 색조가 있음.
   ─ NPC(contrast): 콘트라스트가 좀 더 강하며 범용으로도 적합.
   ─ NPH: 100에 비견될 정도의 고운 입자로 최고의 400 컬러네가로 호평. 실제 감도는 320 정도임.
PRO   160(160S, 160C), 400H, 800Z 프로용 135, 중형, 대형
└─ NP의 대체품. 160S는 NPS, 160C는 NPC의 후속이며, 400H와 800Z는 NPH와 NPZ가 이름을 바꾼 것.
   ─ 160S와 160C가 RMS 3에 125선/mm, 400H는 RMS 4에 125선/mm, 800Z는 RMS 5에 115선/mm.
NC   160 프로용 중형, 대형
└─ 상업사진에 좋음.
<컬러 슬라이드>
SENSIA   100(RA), 200(RM), 400(RH) 일반용 135
└─ 표준적인 색조와 채도를 가진 저가형 범용 제품.
   ─ 100이 RMS 10에 135선/mm, 200이 RMS 13에 140선/mm, 400은 RMS 13에 135선/mm.
PROVIA   100F(RDP III), 400F(RHP III) 프로용 135, 중형, 대형
└─ 표준적인 색조와 채도를 가진 고급 범용 제품.
   ─ 입자와 해상력은 100F가 RMS 8에 140선/mm, 400F는 RMS 13에 135선/mm.
ASTIA (RAP)   100F 프로용 135, 중형, 대형
└─ 인물사진에 특화된 제품. 슬라이드임에도 계조와 콘트라스트가 부드러움. 100F 계열 중 입자가 가장 고움. RMS 7에 140선/mm.
VELVIA (RVP)   50, 100, 100F 프로용 135, 중형, 대형
└─ 자연풍경과 상품사진에 특화된 제품. PROVIA나 코닥 E100VS에 비해 채도, 콘트라스트, 해상력이 높음(채도와 해상력은 역대 최고 수준). 풍경사진, 생태사진계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제품. 100과 100F는 RMS 8에 160선/mm.
   ─ 100F는 기존 100의 개선판으로 노출관용도가 더 높음(+1 ⇒ +2).
   ─ 50은 본사 단종.
T64 (RTP) 텅스텐용 64 프로용 135, 중형, 대형
└─ RMS 7에 115선/mm.
<흑백>
NEOPAN   100(SS), 400(프로페셔널), 1600(프로페셔널) 일반용 135
NEOPAN ACROS   100 고급형 135, 중형
 
[AGFA / LUPUS]   독일. 아그파가 필름사업을 중단한 후 LUPUS가 상표권을 인수하여 필름 생산 재개. 강렬한 발색과 거친 입자. 야외사진에 더 좋음. 붉은 색조.
<컬러 네가티브>

VISTA

 

100, 200, 400, 800

일반용

135

└─ ULTRA에 비해서는 약하지만 역시 강렬한 색감과 콘트라스트.
   ─ 100이 RMS 3.9에 130선/mm, 200이 RMS 4.1에 130선/mm, 400은 RMS 4.4에 130선/mm, 800은 RMS 5에 115선/mm.
APS STAR APS 200, 400 일반용 240
└─ 200이 RMS 4.1에 130선/mm, 400은 RMS 4.5에 130선/mm.
ULTRA   50, 100 고급형 135
└─ 매우 생생한 색감과 강한 콘트라스트를 자랑하지만 다소 어색한 느낌이 있기도 함. 붉은 색조에 특히 민감. 흐린날의 풍경용으로 적절. 100이 RMS 3.8에 140선/mm.
OPTIMA   100, 200, 400 프로용 135, 중형
└─ 아그파의 기존 제품들에 비해 붉은 색조를 실제에 가깝게 억제한, 전반적으로 표준적인 튜닝의 범용 제품.
   ─ 100이 RMS 4에 140선/mm, 200이 RMS 4.3에 130선/mm, 400은 RMS 4.5에 130선/mm.
PORTRAIT   160 프로용 135, 중형
└─ RMS 3.5에 150선/mm.
<컬러 슬라이드>

CT PRECISA

 

100, 200

일반용

135

└─ 100이 RMS 10에 130선/mm, 200은 RMS 12에 120선/mm.
RSX II   50, 100, 200 프로용 135, 중형. 대형
└─ 건축사진에 많이 사용됨. 풍경에도 적합. 약간 차가운 발색과 강한 콘트라스트.
   ─ 50이 RMS 10에 135선/mm, 100이 RMS 10에 130선/mm, 200은 RMS 12에 120선/mm.
<흑백>
APX   25, 100, 400   135, 중형, 대형
└─ 25(단종됨)는 일반 100 필름에 비해 2배, 100 또한 1.2~1.5배 수준의 높은 해상력.
   ─ 100이 RMS 9에 150선/mm, 400은 RMS 14에 110선/mm.
SCALA 크로모제닉 슬라이드 200X   135, 중형, 대형
└─ 일부의 아그파 현상소에서만 현상 가능. RMS 11에 120선/mm.
 
[KONICA]   일본. 필름사업 중단. 화사하면서도 채도가 낮아 부드러운 느낌으로 인물사진에 더 좋음. 입자는 굵은 편. 푸른 색조.
<컬러 네가티브>

CENTURIA

 

100, 200, 400, 800, 1600

일반용

135

VX SUPER

 

100, 200, 400

일반용

135

CENTURIA APS

APS

200, 400, 800

일반용

240

IMPRESA

 

50

프로용

135, 중형

└─ CENTURIA에 비해 입자는 더 곱고 콘트라스트와 발색은 더 부드러움.

PROFESSIONAL

 

160

프로용

135, 중형

└─ 스튜디오 및 웨딩 인물사진용.

CENTURIA PRO

 

400

프로용

135, 중형

└─ 인물사진용.
<컬러 슬라이드>

KONICACHROME CENTURIA

 

100(SRA), 200(SRM)

일반용

135

R-100

 

100

일반용

135

<흑백>
KONICAPAN   100, 400   135
INFRARED 750 적외선용 기본 32   135, 중형
 
[ILFORD]   영국. 흑백만을 생산하는 흑백의 명가. 코닥에 비해 부드럽고 고전적인 느낌.
<흑백>
PANF PLUS   50   135, 중형
PAN   100, 400   135, 중형
└─ 구형 제품군으로 본사 단종.
DELTA   100, 400, 3200   135, 중형, 대형
└─ 최근 제품군. 기존 제품에 비해 화질 향상. 코닥 T-MAX에 비해 부드러움.
FP4 PLUS   125   135, 중형, 대형
└─ 증감현상이 용이함.
HP5 PLUS   400   135, 중형, 대형
└─ 증감현상이 용이함.
XP2 SUPER 크로모제닉 400   135, 중형
└─ 세계최초의 크로모제닉 필름이었던 XP1의 개선판. 코닥 BW400CN에 비견됨.
SFX 적색광용 200   135, 중형
└─ 적색에 특별히 민감하게 반응하여 레드 필터를 쓴 것과 유사한 효과를 냄.

 

[ROLLEI]   독일. 필름은 흑백에 한해 생산.
<흑백>
PAN25   25   135, 중형
└─ 해상력이 매우 높음. 아그파 APX 25와 상당히 유사한 특성.
RETRO   100, 400   135, 중형
└─ 부드러운 계조. 400의 경우 200으로 찍어 증감현상하는 편이 더 좋음.
R3   25~6400 (기준은 200~400)   135, 중형, 대형
└─ 증감현상 전용 제품. 계조가 부드러우며 관용도는 비교불가능의 수준.
INFRARED 적외선용 400   135, 중형, 대형
ORTHO   25   135, 중형, 대형
└─ 과학 및 그래픽용 특수필름.
 
[BERGGER]   프랑스. 흑백만 생산. 실버리치 필름.
<흑백>
BRF   15, 100(이상, 중형 only), 200, 400   135, 중형
BPF   200, 400   대형
└─ BRF와 BPF는 동일한 유제를 쓴 제품이며 판형에 따라 이름만 다른 것.
 
[FOMA]    체코. 흑백만 생산. 구식 제조법을 고수하고 있음. 고전적이고 콘트라스트가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
<흑백>
FOMAPAN   100(클래식), 200(크리에이티브), 400(액션)   135, 중형, 대형(100 only)
FOMAPAN R 슬라이드 100   135

(1) 기본 성질에 따른 구분

 

[컬러 네가티브]  프린트 필름이라고도 한다. 상표명이 코닥컬러처럼 '~컬러'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애초부터 인화를 위한 원고, 재료의 용도로 개발된 것이므로 인화 용도로는 슬라이드보다 유리하다. 인물사진용으로도 슬라이드보다 낫다는 의견이 많다. 노출관용도가 높은 것 또한 장점이어서 일반적으로 +3~-1 정도이다.

네가티브 현상/인화방식은 사진 발명의 최초단계(1830년대)에서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다게르와 거의 동시에 사진술을 세상에 내놓은 탈보트의 칼로타입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네가티브와 포지티브라는 용어는 사진술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던 동시대의 발명가 허셀이 고안한 것으로, 'Photography'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것 역시 그이다.

그러나 초기의 네가티브는 당연히 흑백이었으며, 컬러사진의 등장은 한참 뒤의 일이다. 컬러사진의 원리는 일찌기 1855년 물리학자 맥스웰에 의해 확립되었지만 코닥에서 제품화할 수 있는 수준의 컬러필름을 최초로 만들어낸 것은 1928년, 이를 출시한 것은 1935년이나 되어서의 일이었다. 그리고 컬러사진이 (기록물이 아닌) 예술작품으로 흑백사진과 동등한 인정을 받게 된 것은 그로부터 다시 40여년이 지난 1970년대였다.

 

[컬러 슬라이드]  포지티브, 리버셜 필름, 트랜스페어런시 필름이라고도 한다. 상표명이 후지크롬처럼 '~크롬'으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네가티브보다 뒤에 개발되었으며, '리버셜 필름'이라는 말도 네가티브의 반대라는 뜻으로 생긴 것이다. 애초부터 슬라이드 상영이나 인쇄를 위해 개발된 것이므로 이런 용도로는 네가티브보다 유리하며(예를 들어 슬라이드의 계조범위가 400:1인데 비해 인화물은 100:1에 불과하다고 한다), 육안으로 필름을 확인하면서 스캔할 수 있다는 점과 베이스 색깔이 없다는 점 때문에 디지털화에도 더 유리하다.

반면 인화에는 오히려 불리했는데, 예전에는 보통 네가티브로 듀프(복제)해서 인화하곤 했기 때문에 슬라이드의 장점이 다 날아가버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슬라이드 전용의 시바크롬 인화였으나 이 또한 오염물질이 너무 많이 발생한다는 단점으로 인해 얼마 전 생산이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필름을 맡기면 스캔해서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 인화하는 방식이 일반화된 지금에 와서는 이런 불리함도 사라진 셈이다.

또한 필름 자체의 특성과 인화과정이 생략된다는 점으로 인해 관용도도 네가티브보다 훨씬 낮으며(DSLR과 비슷한 수준이다), 감도가 높아질수록 화질열화가 비교적 심해 ISO 400의 경우 네가티브보다 오히려 화질이 떨어지기도 한다. 풍경, 생태, 여행, 건축, 광고 등의 전문적인 용도에는 ISO 50~200의 슬라이드 필름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

 

[흑백]  상표명에 일포드 팬처럼 '팬'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팬크로매틱 타입임을 뜻함). 처음 발명될 때부터 사진은 흑백이었으며, 특유의 半현실감과 표현력으로 인해 디지털 시대에도 그 위상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디지털 기술에 의해 흑백촬영이 한층 용이해지면서 인기가 더 높아지는 감마저 있다. 관용도는 컬러 네가티브와 같은 수준이며 보존의 용이성은 더 높다.

흑백필름은 대부분 네가티브지만 아그파 SCALA 등 극히 일부 슬라이드 제품도 존재한다. 상당수의 유럽 필름회사들, 즉 ILFORD(영국), ROLLEI(독일), BERGGER(프랑스), FOMA(체코), EFKE(크로아티아) 등은 흑백필름만 생산하고 있기도 하다. 흑백필름의 현상과 인화는 컬러에 비해 한결 용이해서 흑백사진을 주로 하는 사진가의 상당수가 자가현상/인화를 한다. 반면 컬러필름은 현상액의 온도차 허용치가 0.5도 이하일 정도로 까다롭다는 점, 실온보다 훨씬 높은 고온을 요구한다는 점, 작업과정의 복잡함, 약품의 높은 독성, 값비싼 비용 등의 난점이 있어 프로들도 거의 자가현상/인화를 하지 않는다.

  

  

(2) 판형에 따른 구분

 

아래에서 말하는 110, 135, 120, 220, 240 등의 숫자는 코닥에서 이런 필름들을 처음 출시하면서 붙였던 제품코드다. 필름의 사이즈와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따라서 135mm, 120mm 등으로 표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110]  17x13mm(4:3). 롤당 12장, 24장 제품이 있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가장 작은 포맷의 필름. 이 필름을 쓰는 카메라는 모두가 P&S(똑딱이)일 만큼 화질보다는 휴대성, 편의성을 추구하는 포맷이다. 따라서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자연스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APS(240)]  Advanced Photo System. 90년대 후반부터 보급. 하나의 필름과 카메라로 3가지 판형을 찍을 수 있다. 정확하게는 항상 한 가지(APS-H) 포맷으로 찍힌 후 촬영정보에 기반하여 크롭인화를 해주는 방식이지만. APS-C(classic, 25.1x16.7mm, 3:2), APS-H(high definition, 16:9), APS-P(panorama, 3:1) 포맷이 가능하며 롤당 15장, 25장, 40장 제품이 있다. 그 외에도 촬영 도중에 필름 교체 및 재사용 가능, 필름면에 촬영정보 기록기능, 필름 장전 및 촬영 후 보관의 용이함 등 기존 35mm의 단점을 다양하게 보완하고 있으나 이 역시 편의성 중심의 제품(작은 판형, ISO200 이상만 출시, APS용 고급카메라의 부재)이었기 때문에 곧이어 불어닥친 디지털 붐으로 인해 빛도 보지 못한 채 사장되어가고 있다.

 

[35mm(135)]  36x24mm(3:2). 롤당 12장, 24장, 36장 및 100피트 롱 롤(DIY로 필름통에 감아서 써야 함) 제품이 있다. 이른바 필름카메라의 표준 판형. 원래는 영화용으로 나온 필름을 사진에 도입한 것이다. 라이카에서 1925년 최초의 상용 35mm 필름카메라를 출시한 이후 급격하게 기존의 대형 포맷을 대체하였으며, 이와 함께 사진의 역사 또한 새로운 시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디지털의 등장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으나 필름 복고붐의 덕으로 여전히 명맥은 유지하고 있다.   

* 하프사이즈 카메라: 35mm 필름을 세로로 반을 나눠서 쓰는 카메라. 24x18mm(4:3). 당연히 2배의 컷을 찍을 수 있으며, 평소처럼 카메라를 가로로 잡으면 세로프레임이 된다. 올림푸스의 PEN EE-3 및 PEN-F/FT 등이 유명하다.
* 35mm 파노라마 카메라: 35mm 필름을 온전히 사용하여 파노라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 네 가지 방식이 있는데 가장 흔한 것은 35mm용 광각렌즈식으로, 36x24mm와 65x24mm를 번갈아 찍을 수 있는 후지의 TX-1/2 및 핫셀블라드의 X-PAN (II)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는 35mm용 렌즈회전식으로, 노블 드레스덴(독)의 '노블렉스' 시리즈와 파논(일)의 '와이드럭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제품에 따라 다르나 대략 60x24mm 정도를 찍어낸다. 이들은 중형포맷용 제품도 출시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일부 6x7 포맷 중형카메라가 채택하고 있는 기능으로, 전용 필름백을 장착해 35mm 파노라마를 찍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카메라 자체가 회전하며 최대 360도의 화각까지도 찍어내는 제품들도 있긴 하지만 거의 쓰이지 않는다.

 

[중형(120/220)]  롤필름의 세로폭은 6cm이지만 가로 넓이는 카메라에 따라 유동적이다. 한 롤당 찍을 수 있는 컷수 역시 이에 따라 달라져서 645는 16장, 6x6은 12장, 6x7은 10장, 6x9는 8장 등이다.(조금 덜 찍히기도 한다.) 판형은 645(6x4.5cm), 6x6, 6x7, 6x8(후지 제품군만 있음), 6x9, 610(플라우벨의 Veriwide 100이 유일), 612, 615, 617, 624 등 매우 다양하다. 35mm에 비해 645는 약 3배, 6x6은 약 4배, 6x7은 약 5배나 필름 면적이 넓으므로 화질도 그만큼 좋다. 롤라이에서 1928년 최초의 6x6 TLR 카메라를 출시한 이후 프로용 포맷으로 오랜 동안 사랑을 받아왔으며, 디지털 시대가 된 지금도 일반 DSLR에 비해 월등한 화질과 중형 디지털백에 비해 현저하게 저렴한 비용이라는 양날개를 단 채 고유의 영역을 고수하고 있다. 135와 달리 파트로네(금속 필름통)도 퍼포레이션(필름 가장자리에 일렬로 나있는 구멍)도 없으며, 다 찍은 필름을 되감는다는 개념도 없다. 한쪽 스풀에서 다른쪽 스풀로 옮겨감긴 것을 그대로 꺼내어 현상한다.

* 120과 220: 220은 단지 필름 롤의 길이가 120보다 2배 길고, 따라서 롤당 컷수도 2배 많을 뿐이다. 그러나 120에 비해 잘 쓰이지 않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120은 필름을 보호하기 위해 필름뒷면에 보호용 종이(암지)가 함께 말려있다. 220은 이 종이를 없앰으로써 같은 크기의 롤에 2배의 필름을 감을 수 있게 만든 것인데, 그 결과 필름의 손상가능성이 높아진다. ② 카메라에 따라서는 220을 쓸 경우 별매의 220용 필름백을 장만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비용 및 번거로움이 발생한다.

   

[대형(시트 필름)]  조작법부터가 매우 다른 대형 뷰카메라(스튜디오용 테크니컬 뷰카메라와 야외용 필드카메라)에 쓰이는 필름. 사실은 가장 고전적인 형태이다. 4x5"(10.2x12.7cm)와 8x10"(20.3x25.4cm)이 가장 널리 쓰이며, 그밖에도 5x7", 11x14", 9x12cm, 18x24cm 등 매우 다양한 판형이 존재한다. 4x5만 하더라도 35mm 대비 무려 15배에 이르는 필름 면적을 자랑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상당 기간 프로용 포맷으로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타]  영화 쪽이나 산업용으로 쓰였던 8mm, 70mm 등의 필름, 미녹스(독) 카메라용 소형필름(10x8mm), 1회용인 폴라로이드와 후지 인스탁스, 이제는 사라진 포맷인 126(28x28mm), 127(세로폭 4cm) 등이 있다.

  

  

(3) 특성에 따른 구분

 

[감도]  ISO(International Standards Organization 국제표준화기구), ASA(American Standards Association 미국표준협회), DIN(Deutsche Industrie Norm 독일산업규격), EI(Exposure Index)의 4가지 기준이 있다. 예전에는 미국의 기준인 ASA와 독일의 기준인 DIN이 각각 쓰였으나 결국 미국식이 국제표준(ISO)으로 정해져 현재는 이것만 쓰이고 있다.(심지어 과거에는 영국, 이태리, 일본 등도 고유의 규격을 내세웠었으나 일찌감치 사라져간 바 있다. 예컨대 일본은 S, SS, SSS를 각각 ISO 50, 100, 200에 해당하는 규격표기로 썼었다. 후지의 흑백필름인 NEOPAN 100의 약칭이 SS인 이유가 이것이다.) 따라서 ISO값과 ASA값은 동일하다. EI값 역시 이들과 기본적으로는 같지만 ISO/ASA가 일반적인 수치라면 EI는 촬영을 마친 특정 필름의 실제 감도를 말하는 현상용어로 쓰인다. 이는 증감촬영, 필름의 상태 등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같은 ISO 100 필름이라도 실제 감도는 상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ISO/ASA와 DIN값을 대조하면 다음과 같다.

 

ISO

ASA

DIN

25/15˚

25

15

32/16˚

32

16

50/18˚

50

18

64/19˚

64

19

100/21˚

100

21

125/22˚

125

22

160/23˚

160

23

200/24˚

200

24

400/27˚

400

27

1000/31˚

1000

31

1600/33˚

1600

33

3200/36˚

3200

36

 

[조명]  카메라가 화이트밸런스를 조절할 수 없는 필름 세계에서는 1차적으로 컬러필터를 사용하여 화이트밸런스 보정을 한다. 그러나 컬러 슬라이드의 경우 보다 정확한 색재현을 위해 데이라이트용(D)과 텅스텐용(T) 필름이 구분되어 출시되고 있다. 특히 텅스텐용은 제품이름에 'T'자를 붙여 구분이 쉽게끔 한다. 데이라이트용은 플래쉬 촬영시에도 쓸 수 있으며 텅스텐용은 백열등, 할로겐등, 촛불 등 모든 노란 색조가 도는 인공조명 하에서 쓴다. 이밖에 주광은 물론 적외선에까지 반응을 하도록 만들어진  적외선 필름(IR)도 컬러와 흑백이 각각 나와있다.

  

  

(4) 기타

  

* 팬크로매틱과 오소크로매틱: 흑백필름의 종류. 오소크로매틱(비전정색성 非全整色性)은 주로 20세기 초까지 쓰이던 흑백필름으로, 요즘의 팬크로매틱(전정색성 全整色性) 필름이 RGB 삼원색에 모두 잘 반응하는 것에 비해 적색에 잘 반응하지 못한다. 그 특성을 이용하여 현재는 카피용 필름 등 몇몇 특수한 용도로 쓰인다.

 

* 크로모제닉: 컬러네가용 현상액(코닥 C-41)으로 현상할 수 있는 흑백필름(참고로 흑백현상액으로 대표적인 것은 D-76, 컬러슬라이드에는 E-6가 있음). 일반 흑백과 달리 동네 사진관에서도 빠르고 손쉽게 현상이 가능하며, 입자가 더 고와 선예도가 높고 관용도 또한 넓다. 이에 반해 컬러네가를 흑백으로 인화한 듯한 부드러운 톤과 밋밋한 느낌은 단점으로 꼽히지만, 스캔/후보정에는 오히려 더 유리할 수도 있다. 가격은 일반 흑백필름과 같은 수준이다. 기본적으로 세피아톤 베이스다.

 

이밖에도 일반사진용이 아닌 산업용으로 마이크로필름, 항공필름, 감시카메라용 필름, 압력측정용 필름, 방사능 측정용 필름, 엑스레이 필름 등 수많은 종류의 필름이 있다.

1. 색의 속성

  

1-1. 색의 3속성(=3요소)

 

색상 hue: 색의 특성. =색조. 현재 ISO표준 색체계이자 KS규격이기도 한 먼셀표색계에서는 H로 표시.

채도 saturation: 색의 선명도. =포화도. 원색에 가까울수록 채도가 높다. 먼셀표색계에서는 C(chroma)로 표시.

명도 luminosity, lightness: 색의 밝기. 먼셀표색계에서는 V(value)로 표시.


* 휘도 brightness, luminance: 색의 속성이 아님. 빛 또는 반사체 표면의 밝기.


1-2. 색의 종류

 

유채색과 무채색: 유채색은 색의 3속성을 모두 갖지만, 무채색은 명도만을 갖는다.

물체색과 광원색: 색의 3속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는 동일하지만, 물체와 달리 빛은 광량의 변화를 감안해야 하므로 (그 물체 고유의) 명도가 아닌 (그 빛의 현재의) 측광량을 기준으로 한다.

  

 

2. 색의 관계


2-1. 기본개념

 

원색: 흔히 말하듯 밝고 요란한 색이 아니라 다른 색들로부터 이 색을 얻을 수 없는 기본색들을 말함. 여러 가지 산업, 학문분야에서 기본구성이 되는 색들을 일컫기도 하나 이 역시 과학적 개념은 아님.

3원색: 과학적 근거에 따른 3가지 기본색. 그러나 색을 얻는 방법에 따라 가법 3원색과 감법 3원색으로 나뉘며, 감법에도 구식과 신식이 있다. 이에 따라 3원색에도 세 종류가 있게 된다.

2차색: 3원색 중 두 가지를 섞어서 얻은 세 가지 색. 나머지 하나의 원색과 보색관계에 놓인다. 여러 3원색이 존재함에 따라 2차색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보색: 흔히 말하듯 대비시키면 튀어보이는 색이 아니라 빛의 반사/흡수성질이 반대여서 합하면 무채색이 되는 색을 말함. 색상환에서는 서로 정반대편에 위치하게 된다. 가색법에서의 보색을 섞으면 백색, 감색법에서의 보색을 섞으면 흑색이나 회색이 된다.


2-2. 가색법(addictive)에 따른 3원색 (=빛의 3원색 =가법 3원색 =색광의 3원색)


적, 녹, 청(남색, 청자색) (RGB).

이를 혼합하는 것을 가산혼합(=가법혼색=가색혼합)이라고 함.

빛을 활용하는 모든 기기(TV 및 컴퓨터 모니터,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 스캐너 등)는 이 체계에 기반하고 있음.

세 가지 빛 모두를 같은 비율로 합하면(=하얀 스크린에 투사하면) 백색이 됨.

세 가지 중 두 가지를 같은 비율로 혼합하면 시안(사이안, 청록; 녹+청), 마젠타(자홍, 진홍; 적+청), 옐로우(적+녹)의 2차색이 얻어지며, 이렇게 얻어진 색은 곧 감법 3원색을 구성함.

각각의 원색은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두 원색으로부터 얻은 2차색과 보색관계이며, 따라서 두 보색을 합하면 백색이 됨.


사용자 삽입 이미지

2-3. 감색법(subtractive)에 따른 3원색 (=물감의 3원색 =감법 3원색 =색료(색재)의 3원색)


시안, 마젠타, 옐로우 (CMY).

이를 혼합하는 것을 감산혼합(=감법혼색=감색혼합)이라고 함.

색료(물감, 잉크 따위)를 활용하는 모든 매체(그림, 사진인화물, 인쇄물 등)는 이 체계에 기반하고 있음.

세 가지 색료를 같은 비율로 합하면(=물감을 섞거나 색필터를 겹치면) 흑색(K)이 됨.

세 가지 중 두 가지를 같은 비율로 혼합하면 적(마젠타+옐로우), 녹(시안+옐로우), 청(시안+마젠타)의 2차색이 얻어지며, 이렇게 얻어진 색은 곧 가법 3원색을 구성함.

각각의 원색은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두 원색으로부터 얻은 2차색과 보색관계이며, 따라서 두 보색을 합하면 흑색이나 회색이 됨.


* 감법 3원색으로 과거에는 적, 청, 황(RBY)을 꼽았으나 과학적으로 부정확하다고 하여 위와 같이 수정되었다. 그러나 과거의 방식에 따른 설명이 아직도 많아 종종 혼동을 일으킨다. 문맥상으로 보아 시안과 마젠타를 말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청색과 적색이라고 표기하고 있는 경우도 흔하다. CMY 3원색은 가법 3원색과 정확한 대비관계에 놓이지만 RBY는 그렇지 못하다. RBY로부터는 그린(청+황), 오렌지(적+황), 바이올렛(적+청)의 2차색이 얻어진다.

* 감법 3원색에 흑색을 추가한 4색(CMYK)이 보통의 인쇄에 쓰이는 기본 4색이며, '4도인쇄'라는 용어도 이로부터 비롯된 것.

* 흑색을 추가하는 것은 이론과는 달리 기술적 한계로 인해 3원색을 합해도 완전한 흑색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 최근에는 더욱 정밀한 색조를 얻기 위해 7색, 8색 이상의 잉크도 사용되고 있다. 밝은 시안, 밝은 마젠타, 밝은 흑색(이상 7색), 더 밝은 흑색(이상 8색) 등이 추가된다.


2-4. 그밖의 '원색'들


심리 4원색설: 독일의 심리학자 K.E.K. 헤링의 색채감각 이론에 따라 적, 황, 녹, 청의 4주요색을 원색으로 간주하는 설. 심리학적 의미는 있으나 자연과학적 근거는 없다.

색각이론: 망막-시신경의 과정에 단계설을 채택한 이론. 감광색소에서 시신경까지 인체의 각부분에서의 반응에 따라 여러 종류의 원색들이 있다고 하는 설. 의학적인 의미는 있으나 산업에 응용하기는 곤란하다.

산업용어들: 인쇄, 디스플레이 장비 등의 산업분야에서 편의에 따라 무채색을 더하여 RGBW 4원색, CMYK 4원색이라고 부르는 것. 물론 편의상의 용어일 뿐 정확한 개념은 되지 못한다.



3. 색의 효과


온감과 냉감: 노랑~빨강 계열은 따뜻해보이고, 초록~보라 계열은 차가워보인다. 같은 색상이라도 밝으면 더 시원해보인다.

원근: 온감을 주는 색은 더 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냉감을 주는 색은 더 뒤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크기: 온감을 주는 색은 더 커보이고, 냉감을 주는 색은 더 작아보인다.

시간감각: 온감을 주는 색은 더 긴 시간이 지난 느낌을 주고, 냉감을 주는 색은 더 짧은 시간이 지난 느낌을 준다.

밝기: 밝은 색은 명랑한 느낌을 주고 어두운 색은 침울한 느낌을 준다.

무게: 밝은 색은 더 가벼워보이고, 어두운 색은 더 무거워보인다.

강도: 밝은 색은 더 부드러워보이고, 어두운 색은 더 단단해보인다.

대비효과: 같은 색이라도 배경을 어두운 색으로 하면 더 밝아보이고, 배경을 특정한 색상으로 하면 그 보색에 더 가까워보인다.

동화효과: 한 색에 가느다란 흰색 줄무늬를 넣으면 색깔 전체가 엷어져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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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첨언


컬러사진을 위해서는 색이란 것에 대한 기본이해도 필요하므로 정리를 해보긴 했지만, 엄연히 색채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이 정립되어 있는 영역이라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다. 색들의 관계와 효과 따위를 외우기도 어렵거니와 과연 실제상황에서 이를 일일이 감안해가며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늘 화려한 사진이 좋은 것이 아니듯 늘 보색대비를 고려할 일 또한 아니다.(물론 스튜디오 사진이라면 훨씬 더 면밀한 고려가 가능하고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이상의 개념들은 일반상식 정도로 알고 넘어가고, 훌륭한 컬러사진가들의 작품을 자꾸 감상하며 감각을 터득해가는 편이 훨씬 실질적인 방법이리라 본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그 유명한 스티브 맥커리 Steve McCurry, 대표적인 매체로는 더 유명한 월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있다. 색이란 것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이해를 원한다면 [컬러리스트 - 이론편](국제), [색의 비밀](미술문화), [디지털 컬러](해뜸) 등 상당히 많은 책들이 있는 것 같지만, 읽은 것이 없으므로 소개는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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