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과 인화지의 유제는 염료(dye)의 일종으로, 온도와 습도에 상당히 민감하다. 우리나라의 장마철이나 한여름 날씨에 아무렇게나 방치해도 괜찮은 물건이 아니다. 직사광선이 비치는 곳, 습도와 먼지가 가득한 장롱 속, 온도가 마냥 올라가는 여름날의 자동차 안은 말할 것도 없다. 흑백보다는 컬러 필름이, 일반용보다는 프로용 필름이, 저감도보다는 고감도 필름이 더 민감하다는 사실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아래의 내용은 필름 제조사들이 권하고 있는 방법으로, 코닥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고 있는 'Storage and Care of KODAK Photographic Materials'(PDF)를 주로 참고했다. 현상하지 않은 필름을 빛에 쬐어서는 안된다는 등의 기초적인 내용은 생략했다.


(1) 구입할 때 확인할 사항


[유통기한]  필름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의도적으로 거친 입자감을 표현하는 등의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면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필름인지 반드시 확인한 후 구입해야 한다. 전문매장이라면 걱정이 없겠지만 일반상점인 경우 가게 주인도 신경을 안 쓰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감도 필름이 유통기한에 더 예민하다. 유통기한이 며칠 지났다고 못 쓰는 것이야 아니지만 기왕이면 새 제품일수록 좋을 것이다.


[보관상태]  전문매장에서 필름을 구입하는 것이 유리한 이유는 또 있다. 제조사들이 권하는 대로 냉장보관을 하기 때문이다. 일반상점 한구석에 뜨뜨미지근하게 진열되어있는 필름은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것이라도 좋은 화질을 보장할 수 없다. 동네 현상소조차 냉장보관을 않은 채 대충 쌓아두고 파는 경우가 많으므로 확인이 필요하다.


(2) 사용 전의 보관방법


[온도]  일반용 필름이라도 포장을 뜯지 않은 상태로 적어도 20도를 넘지 않는 곳에서 보관해야 한다. 흑백필름과 일부 프로용 필름(ex: 코닥 포트라)도 비슷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프로용 컬러필름은 15도 이하의 차가운 곳에서 보관해야 하며, 특히 적외선 필름은 냉동실에 넣어두어야 한다. 대개의 필름 포장지에는 적정 보관온도가 표기되어있는데, 예를 들어 코닥 E100VS는 13도, 후지 벨비아100은 15도, 일포드 델타100은 24도 이하를 지시하고 있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이다. 냉장실도 좋으며 수개월 이상의 장기보관을 위해서라면 냉동실이 더 좋다. 단지 꺼내자마자 바로 쓰지만 않으면 된다. 꺼낸 후 실온에서 얼마동안 놓아둔 다음 쓰는 게 좋은지는 제조사마다(또한 제품마다) 제시하는 기준이 다르다. 코닥의 경우 35mm 필름은 냉장실에서 꺼낸 후 1시간 15분, 냉동실은 1시간 반을, 중형필름은 냉장실 45분, 냉동실 1시간을 제시하고 있으며 벌크형 롱 롤과 다량포장된 대형필름은 좀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아그파는 냉장실에서 꺼낸 후 2시간을 제시하고 있다.


[습도]  온도뿐 아니라 습도도 중요하다. 포장된 상태로도 60%를 넘지 않는 것이 좋으며, 이상적으로는 50% 이하인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장마철에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냉장고 안은 생각보다 그렇게 습도가 높지 않지만, 만전을 기하려면 밀폐용기 안에 제습제를 함께 넣고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화공약품]  각종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노출되는 것 또한 필름을 변질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페인트, 신너, 접착제 등은 필름은 물론 사람에게도 매우 좋지 않다.


[엑스레이]  잘 알려진대로 엑스레이를 쬐이면 화질이 뿌옇게 된다. 한 번이라면 몰라도 여러 번 반복된다면 상당히 나빠질 수 있다. 고감도 필름의 경우 더욱 문제가 커진다. 가급적이면 필름이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하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 좋다. 엑스레이로 인한 화질저하는 현상을 한 다음엔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장기여행시에는 다 찍은 후 그 나라의 믿을 만한 전문현상소에서 바로 현상을 해버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3) 촬영을 시작한 후의 관리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촬영을 시작한 후에는 변질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므로 가급적 빨리 현상하는 것이 최선이다. 일반적으로 필름 제조사들은 건냉한 곳에서 보관하더라도 2주를 넘기지 말 것을 권장하고 있다. 특히 프로용 필름은 더 민감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그날 한 통을 다 찍고 즉시 현상하는 것이 가장 좋으며, 다 찍었지만 바로 현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밀폐용기 안에 넣어 냉장고 안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이때 역시 냉장고에서 꺼낸 후 (습기가 서리는 것을 막기 위해 밀폐용기에 넣은 채로) 1시간 이상 지난 후 현상해야 한다.


(4) 현상을 마친 필름의 보관방법


[온도, 습도, 빛]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점 하나가 현상을 마친 필름은 반영구적인 줄 안다는 것이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으며, 촬영 전과 마찬가지로 15도 이하의 온도와 60% 이하의 습도를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변색·탈색이 진행된다.(적정 온습도를 지켜도 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한결 더디게 만들 수는 있다.) 빛에 노출되지 않는 것 역시 중요한데, 네가티브라면 그럴 일이 잘 없겠지만 슬라이드의 경우 좀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라이트박스나 환등기에 걸어놓을 경우 강한 빛과 열을 동시에 쬐이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라이트박스 위에 오래 방치해두는 등의 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역시 (디지털 이미지를 당장 필요로 하지 않더라도) 필름스캔을 해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스캐너 또한 날이 갈수록 싸고 좋아지고 있어 지금 스캔한 것을 최종본이라 장담할 수는 없으므로 필름 자체의 보관에도 보다 신경을 쓰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필름보관용 제품]  현상소에서 찾아온 상태 그대로 대충 처박아두는 것은 최악이다. 필름보관용 시트에 넣어 바인더에 철을 해서 적절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여러 모로 좋은데, 이때 시트가 중성제품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저가형 제품 중에는 화공약품이 스며나오는 것이 있어 필름의 변질을 오히려 재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매장에서 중성재질로 만든 시트를 구입할 수 있는데, 네가티브용이라면 굳이 투명비닐이 필요없으므로 아예 종이로 된 제품이 습기방지에도 좋으며 슬라이드는 중성 투명비닐로 된 제품을 선택하는 편이 유리할 것이다. 전자로는 독일제 하마(Hama), 후자로는 미국제 프린트파일(Print File)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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