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많은 필터들 가운데서 모든 사진가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편광필터이다." - 브라이언 피터슨, [뛰어난 사진을 위한 노출의 모든 것], 청어람미디어.
CPL을 보통 '하늘을 새파랗게 해주는 필터'로만 알고 계시는 분이 많은 것 같아서 다양한 용례를 한번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그에 앞서 편광필터에 대해 최소한의 설명을 곁들입니다. 자세한 것은 SLR클럽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CPL(Circular Polarized; 원편광) 필터는 여러 방향에서 카메라 렌즈로 들어오는 빛 중 특정 방향의 것만 통과시키고 나머지(편광)를 차단시켜주는 것입니다. 생긴 것은 UV 필터같고 단지 유리가 좀 어두운 색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편광막이라는 물질이 있어 이러한 기능을 하는 것인데, 그 결과 사진에 있어 상당히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지요. 늘 쓰는 물건은 아니므로 겐코, 호야, 마루미 등 일본회사의 중가제품으로도 충분하고 가격은 필터구경에 따라 다르지만 몇 만원 정도입니다.
예전에는 그냥 편광필터, PL필터라고 불렀으나 요즘은 앞에 '원'자 혹은 'C'자가 추가되었습니다. 이유인즉슨 하프미러를 사용해 AF를 잡고 측광을 하는(다시 말해 자동기능이 들어간) SLR이 널리 보급되면서 더 이상 예전식의 직선편광필터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인데요. 하프미러 자체가 일종의 편광필터인 탓이죠. 그래서 요즘 판매되는 것은 모두 CPL이며 용어 또한 그냥 편광, PL이라고 하면 곧 원편광, CPL을 뜻하는 것이 되었습니다.(그러나 사진 교재나 카메라 매뉴얼에 분명 이렇게 나와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구식 직선편광필터를 DSLR에 문제 없이 쓰고 있다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직접 확인이 필요한 부분인 듯합니다.)
(1) 하늘을 '더' 파랗게 및 기타
가장 많이 쓰이는 용도입니다. 우선 사진을 보시죠.(이하의 모든 사진은 아무런 보정 없이 리사이즈만 한 것입니다. 순전히 예제를 목적으로 찍었으므로 작품성은 잊어주세요.)
▼ 효과 최소화 (CPL을 썼지만 거의 안 쓴 것 같이 조절한 상태)
▼ 효과 최대화
'하늘을 파랗게'는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이지만 굳이 언급을 하는 것은 1번으로 처리하고 넘어가자는 속셈만은 아닙니다. 우선 편광필터는 파랗지 않은 하늘을 파랗게 만드는 재주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파란 하늘을 좀 더 파랗게 만들어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순광이나 역광에서는 거의 효과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사광(태양과 90도 각도)일 때 효과가 제일 크다고 하지요.
사실 위의 예제는 그다지 큰 효과도 안 나는 편에 속하고 효과를 준 결과가 더 좋아졌는지도 의문이군요. 그럼에도 이 사진을 예제로 쓴 것은 주의할 점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편광필터는 렌즈 앞에 끼우고서도 다시 앞부분이 뱅글뱅글 돌아가도록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돌리는 각도에 따라 그 효과가 가감되고, 변한 효과는 뷰파인더로 미리 확인이 가능한데요. 여기서 2가지 주의점이 있습니다.
첫째, 빛이 강하고 맑은 날에 효과를 최대화시키면 보기 좋게 파란 하늘이 아니라 괴상하리만치 짙은 감색이 되어버린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사광이라서 프레임 왼쪽과 오른쪽의 밝기 차이가 클 경우, 말도 안 되게 그라데이션 효과까지 증폭되어 거의 한 컷의 카툰이 되기 쉽습니다. 너무 강한 효과가 나지 않도록 신경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하늘만 파랗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체의 색과 빛까지 변화시킨다는 점입니다. 위 예제 사진을 잘 보시죠. 화면 아래쪽 갈대밭의 밝기와 색에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루종일 맑기만 한 날 불과 10초 상간으로 찍은 사진들이므로 다른 차이로는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접하기 흔치 않은 상황이긴 합니다만, 늦은 오후의 빛이 노란색 피사체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경우입니다. 하늘색이 파랗게 되는 것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다른 쪽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첫 번째 용례에 관한 내용을 한 마디로 줄이면 '편광이 능사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불과 몇 만원짜리 액세서리지만 이 역시 연습과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럼 하늘 파란 날만 골라서 그냥 찍으면 되지 뭐하러 이런 걸 또 돈 들여 사고 골치 썩히느냐구요? 예제를 더 보시죠.
(2) 수면에 끼치는 영향
어쩌면 하늘보다 더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대상이 물 표면입니다. 예제입니다.
▼ 효과 최소화
▼ 효과 최대화
누가 봐도 매우 다를 위의 두 사진의 차이는 오로지 편광필터만의 효과에 따른 것입니다. 물 표면에서의 반사를 없애는 효과인데요. 위 사진은 하늘색이 반사되어 파란빛이 돌고 다리 그림자도 거의 안 보이는 반면, 아래 사진은 산란광을 차단한 결과 물 원래의 녹색이 되고 다리 그림자도 뚜렷해졌습니다.(정확히는 물이 원래 녹색인 것이 아니라 이끼와 플랑크톤 때문에 녹색빛이 도는 것입니다. 물이야 당연히 투명하죠.)
이 예제 역시 다소 극단적인 사례입니다만, 이런 효과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우선 물 속을 찍고 싶을 때입니다. 수면의 빛 반사를 억제해 물 속을 최대한 맑게 찍을 수 있으니 민물고기 생태사진 등에 상당히 요긴합니다. 다음은 반영 억제입니다. 수면에 멋진 풍경이 비치는 것도 어느 정도지 심하면 사진이 산만해질 수 있습니다. 이때 사용합니다. 또 물 색깔을 조절할 때도 쓸 수 있습니다. 파란색과 녹색 사이, 짙은색과 밝은색 사이에서 조절이 가능합니다.
(3) 유리창 너머를 찍을 때
반사광 억제의 효과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또 한 가지는 유리창입니다. 물론 그밖에도 피사체를 반사시키는 모든 표면(건물 외벽 등등)에 활용이 가능합니다.
▼ 효과 최소화
▼ 효과 최대화
이 역시 오로지 CPL만으로 낸 차이입니다. 위의 사진에서 자기가 거울인 양 별 것을 다 비춰내던 유리창은 아래 사진에서 거의(완벽하게는 불가능합니다) 존재감을 잃었습니다. 그냥 깨끗하게 찍을라치면야 당연히 가게 안에 들어가서 찍는 것이 최고겠죠. 그러나 유리창을 포함한 더 넓은 장면이나 불가피한 상황 등에서는 이처럼 분명한 효과를 보여냅니다.
(4) 반짝이는 피사체에
위와 비슷한 경우입니다만, 빛을 잘 반사시키는 모든 물체에도 효과는 적용됩니다. 사실 편광필터는 원래 반짝거리는 제품을 촬영하기 위한 용도로 개발된 것이라고 하지요.
▼ 효과 최소화
▼ 효과 최대화
정작 하늘색은 별 차이가 없는데 기둥의 색이 상당히 변하고 있습니다. 한가운데의 흰색 띠처럼 완전히 반짝거리는 부분에는 효과가 거의 없지만 그 주변 부분에 끼치는 영향은 큽니다. 반짝거리는 인공물체뿐 아니라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수면이나 설경, 나뭇잎 등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5) 간이 ND필터 대용으로
낮에 저속셔터를 구사하기 위해 쓰는 ND 필터는 보통 쓰임새도 많지 않고 해서 잘 구비하지 않게 되는 물건 중 하나인데요. 제대로 된 ND 필터만큼은 아니지만 CPL로도 어느 정도는 대용이 됩니다. 여기서는 예제와 설명이 같이 필요하겠네요.
▼ 효과 최대화
편광필터를 효과가 최대화되도록 조절해놓고 카메라가 측광한 대로 노출을 맞춰서 M모드로 찍은 결과입니다. ISO 100에서 1/50초, F4가 나오는군요.
▼ 편광필터 없이 같은 세팅으로
M모드에서 위의 세팅을 그대로 유지한 채 편광필터를 빼고 찍었더니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가공할 노출오버입니다.
▼ 편광필터 없이 적정 세팅으로 변경해서
노출지시계를 보며 적정노출이 되도록 셔터스피드를 조절한 후 다시 찍었습니다. 같은 ISO 100, F4에서 1/320초로 빨라졌군요. 다시 말해 그냥 찍을 경우 1/320초가 나올 것을 편광필터를 쓰면 1/50초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6.4배, 대략 2.5스탑 정도의 차이로군요. 실제 수치는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의 변동이 있으며, 대략 1.5~2.5스탑 정도의 차이를 보입니다. 이 정도라면 ND8(8배 어둡게 만들어줌)이라면 몰라도 ND4를 따로 살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위의 세 사진 중 첫 번째 것과 마지막 것을 잘 비교해보시면 ND 효과 외에도 여러 가지 차이를 간파하실 수 있습니다. 하늘색, 지면 쪽 그늘의 강도, 빌딩 표면 등등. 한편 무지개를 찍을 때도 CPL을 쓰면 더욱 뚜렷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찍어본 사진이 하나도 없어 예제로 보여드리지는 못하겠네요.
주의사항 및 용도
위 (1)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몇 가지 주의사항이 더 있습니다. 한번 정리해볼까요.
- ND 대용이 목적이 아닐 경우, 결과적으로 렌즈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줄이는 CPL의 특징은 곧 주의사항이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셔터속도의 확보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셈이니까요.
- 물건의 특성상 필터가 다소 두껍기 때문에 조리개를 많이 열고 광각에서 찍을 때는 여차하면 비네팅이 생기기 쉽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광각촬영시 조리개를 충분히 조여주거나 광각용으로 최대한 얇게 만든 와이드 CPL 필터를 쓰는 것이 좋습니다.
- UV 필터 앞에 덧끼워 사용하는 것은 비네팅 위험이 한결 높아질 뿐만 아니라 화질과 플레어/고스트의 모든 면에서 피해야 할 사용법입니다. 편광필터니만큼 자외선은 덤으로 차단이 되므로 별달리 UV를 중복사용할 이유도 없습니다.
- 셔터스피드 상의 불리함이나 색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특성을 감안한다면 UV 대신 늘 CPL을 끼워놓는 습관 또한 말리고 싶습니다.
매번 사용할 때마다 돌려가며 정도를 조절해줘야 하고 강한 빛을 받는 피사체에만 영향을 끼치는 물건이므로 그 용도는 제한적입니다. 인물사진에는 거의 쓸모가 없고 길거리 스냅이나 보도사진에 필요할 리도 없어보입니다. 육상 생태사진, 스포츠 사진, 스튜디오 모델사진도 마찬가지겠지요. 물론 압도적인 용도는 풍경사진일테고 건축사진, 기록사진에도 일부 활용될 수 있을 듯합니다.
일각에서는 CPL 필터의 사용조차 일종의 사실왜곡이라며 경원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CPL보다 더한 색색가지 컬러필터도 흑백필름 시절부터 많은 사진가들이 사용해왔으며, 눈에 보이는대로 찍어야만 사실왜곡이 아니라면 플래쉬도 반사판도 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니, 흑백사진이야말로 진짜 심한 사기에 해당하겠군요.
어차피 빛이라는 것은 시시각각 변하며 보는 사람의 물리적-심리적 눈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선글라스를 쓰면 다르고 손차양을 해도 다른 것이 빛인데, CPL이 왜곡이라면 그런 분들은 후드와 UV필터조차 사용하지 말아야 앞뒤가 맞을 것입니다. '사진적 진실'은 실로 난해한 미학적 아포리아이므로 딱히 정답을 제시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사진가들 각자가 선택할 일이겠지요. 저는 씁니다.
[출처] 편광필터(CPL)의 5가지 사용 예제|작성자 유랑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