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최고의 취미 중 하나로 각광받으면서 요즘은 어딜 가나 출사 나온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혼자는 물론 이렇게저렇게 단체출사도 자주 나가보곤 합니다. 그러나 사진 실력을 확실히 높여주는 동시에 사진 찍는 재미를 톡톡히 맛보게 해주는 귀중한 기회임에도, 그냥 놀러나온 김에 카메라 들고온 것과 별다를 것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없지 않은 듯하여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올립니다. 요컨대, 이렇게 출사 나갔다 오면 사진 실력 절대 안 는다, 베스트 10 되겠습니다. 중요도로 1위부터 10위까지 매긴 것이 아니라 시간 진행순서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덥다고 안 나가고 춥다고 안 나가고 비 온다고 안 나가기
DSLR은 튼튼합니다. 한국의 기온 정도라면 한여름부터 한겨울까지,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셔터는 눌러집니다. 방진방습 바디가 아니라는 핑계는 말 그대로 핑계일 뿐입니다. 태풍에 폭우까지 동반하지 않은 이상, 비니루 봉다리 하나 씌우고 간간이 수건으로 닦아주면 됩니다. 이런 날일수록 찍을 것은 더 많아지고 남다른 결과물을 얻을 확률도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출사를 안 나갈수록 사진이 단지 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줄어듭니다.

(2) 출사지에 대한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나오기
특히 단체출사라면 누군가가 앞장을 섰을 것이고, 교통편까지 알려주었겠죠. 그렇다고 아무 사전정보 없이 장비만 달랑 들고 나간다면 시작부터 낙제점입니다. 출사지에 대해 미리 챙기면 챙길수록 유리하고 기회가 늘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대략적인 약도, 그곳의 특징, 특별히 찍을 만한 것 등등. 그냥 거리가 아니라 문화재라든가 여행지라면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바로 이런 준비성에서 프로와 아마추어가 갈린다는 말도 있습니다.

(3) 하이힐 신고 출사 나오기
여성분들... 제발 패션쇼는 평상시에 해주시고 출사 때는 사진을 찍으시기 바랍니다. 발이 아픈데 무슨 사진을 찍습니까. 요란한 차림새 덕에 모두가 나를 쳐다봐주는데 과연 사진이 잘 찍힐까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우선 보는 일입니다. 그것도 조용히, 유심히 보는 것입니다. 보여주기 위해서, 멋져보이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 것 또한 자유입니다. 다만 그 이득은 고스란히 내 사진이 아니라 카메라 회사에게로 돌아간다는 사실만 명심하시면 됩니다. 출사 복장은 최대한 평이하게, 그리고 돌아다니기 편하게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4) 겨울에 모자와 장갑 안 가지고 출사 나오기
이런 용감한 분들, 꼭 계십니다. 어쩌면 (3)번보다 더 심합니다. 발이 아프면 의자에 죽치고 앉아서 셔터찬스를 노려볼 수라도 있지, 손이 시려워 주머니에서 손 빼기가 겁나는데 사진이 찍힐 리가 없지요. 군밤장사 패션, 좋습니다. 한겨울에 밖에서 오래 일하시는 분들의 의상이야말로 사진가들이 가장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입니다.

(5) 장비(주로 렌즈)를 너무 적거나 너무 많이 가지고 나오기
달랑 렌즈 하나로 원하는 사진이 다 된다면 뭐하러 DSLR을 사겠습니까. 12배줌 되는 하이엔드 사죠. 무거워서 싫다면, 똑딱이를 쓰셨어야죠. 프로들은 말합니다. "꼭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만 가지고 다녀라. 바디 2개에 렌즈 3개."-_- 하지만 이건 프로들 얘기이고, 아마추어라면 일단 바디 하나에 렌즈 두 개 정도가 기본이 아닐까 합니다. 경우에 따라 삼각대나 외장플래쉬가 추가될 테구요. 그렇다고 너무 많이 가지고 나와 낑낑대는 것도 역시 어리석은 짓일 겁니다. 또다른 프로의 좋은 말이 있더군요. "들고 뛸 수 있을 정도의 장비만 가지고 다녀라."

(6) 기껏 출사 나와서 달랑 1~2시간 찍고 가기
주로 단체출사 때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만,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출사지까지 오고가는 데만 1~2시간 이상이 걸릴 터인데, 정작 사진을 찍는 시간이 더 짧다면 아깝지 않으신가요? 더구나 출사는 1시간, 뒷풀이는 5시간... 문제 많습니다. 물론 어울려 놀고 즐기는 것도 아마추어 사진의 큰 재미겠습니다만, 그렇게 해서는 사진은 안 늘고 술만 는다는 사실은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7) 단체출사를 빙자하여 놀러다니는 데만 재미 붙이기
위의 내용과 좀 겹치긴 합니다만, 출사는 사진을 찍는 것이 기본목적이지 놀러가자는 것은 아니겠지요. 주객이 전도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너무 엄격한 척하는 것 아니냐고 하신다면, 사진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찍을 수 있겠는지 반문하고자 합니다. 놀러 나온 들뜨고 설레는 마음으로 과연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즐기는 것과 들뜬 것은 다를 겁니다. 좋은 사진을 위해서는 보다 진지하고 집요하며 차분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출사란 행락보다는 순례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요.

(8) 들어가지 말라는 데 들어가고 하지 말라는 짓 하다가 망신 당하기
조심해야 합니다. DSLR 들고 사진 찍는 것, 벼슬 아닙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핸드폰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DSLR 장만할 경제력 있습니다. 오히려 더 조심하고 공손해야겠지요. 자신만이 아닌 모든 사진인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꼴불견은 나도 하지 말고 주변에서 하려고 해도 나서서 막아야겠습니다.

(9) 심지어 출사 중에도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노닥거리느라 바쁘기
결국 사진은 혼자 찍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함께 다니면서 출사라는 행위에 익숙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출사지에 도착해서 "시~작"을 외친 후로는 따로 조용히 다니는 것이 더 낫다고 봅니다. 이것은 여행과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친한 사람들끼리 함께 돌아다니면 당장에는 재미있고 안전하지만 남는 게 없습니다. 제대로 배낭여행 하는 분들이 혼자 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은 결코 그들이 왕따라서가 아닙니다.

(10) 찍은 사진 바쁘다는 핑계로 쳐박아뒀다가 그냥 삭제하기
최악입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찍는 순간의 화면 구성과 조작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찍을 것과 찍을 곳을 결정하는 일에서부터 찍은 사진을 세상에 내어놓는 일까지의 모든 과정이 사진 작업입니다. 그 중에서도 찍은 사진을 스스로 리뷰하면서 잘된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따져보는 일은 절대로 생략해서는 안되는 대목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카메라 만지는 재미, 기계 조작하는 재미에 빠져서 사진이 즐거울 수 있습니다(특히 남자분들). 하지만 그것도 1~2년, 서서히 그 재미에도 물리고 사진은 제자리걸음이고 먹고살기는 바쁘고... 그 다음은 생략해도 되겠죠?
그래도 상관 없다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사진 실력이 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 "내가 찍은 사진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고 고쳐가는 작업입니다. 둘째, 사진 찍는 일에 의미를 느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남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주변 사람 몇몇에게라도 보여주는 편이 훨씬 낫고, 이런 온라인 갤러리에 종종 올려보면 더 좋습니다. 나아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시민리포터같은 것이라도 해본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이 두 가지를 위한 전제조건, 찍은 사진을 되살펴보는 작업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사진은 취미입니다. 취미는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겠죠. 출사를 핑계로 사람을 만나고 놀러나가는 것도 아주 의미있는 일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한 많은 분들이 취미임에도 사진을 좀 더 잘 찍고자 고민을 하시므로 다소 까다로운 레벨로 이야기해보았습니다. 행여나 제 얘기가 출사 다니는 재미조차 빼앗는 부작용을 낳지 않기 바라며, 그저 가능하다면 (그리고 원한다면)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사진 실력이 더 늘고, 나아가 내 사진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유용하게 쓰이는 데서 진정한 즐거움을 찾아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였음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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