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정의 기준은 어디인가? 수많은 논란이 있는 부분이지만 나의 생각은 이렇다; 사진을 찍을 때 가할 수 있는 통상적인 조작 및 찍히는 장면 속에 원래 없었던 것을 사진 속에서 없애는 수준까지가 적정한 후보정이며 이것들은 얼마든지 해도 된다. 그러나 이 수준을 넘어가면 그것은 사진이 아니라 미술/일러스트레이션이다.(나는 사진과 미술은 별개의 장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반면 필름 시절에도 했으니 디지털에서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필름 시절에 했던 것 중에도 애매한 작업들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항간에 필름 시절에는 후보정이 없었는데 디지털 시대가 되어 후보정이 횡행하게 되었다는 일부 억측이 있다. 무지에 근거한 완벽한 오해다.)
1. 사진을 찍을 때 가할 수 있는 통상적인 조작에 해당하는 것 : 찍을 때 할 수도 있었던 것을 찍은 다음에 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찍을 때 하고 나중에 안 하는 것이 더 좋다. 그렇게 하는 편이 따지고 보면 시간도 노력도 훨씬 덜 들거니와, 후보정을 하면 할수록 화질이 나빠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후보정으로도 나쁜 사진을 좋게 할 수는 없다"는 유행어는 전적으로 옳다. 보정은 어디까지나 보정일 뿐이지 창조는커녕 재창조도 아니다.
(1) 크롭(=트리밍) : 구도 설정과 관계되므로 당연히 허용된다. 크롭 안 하는 것을 자랑인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항상 표준화각의 단렌즈로만 찍으시는가? 아니라면 크롭을 안할 이유가 전혀 없다. 특히 초망원 촬영에서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단, 작게 크롭할수록 화질에서는 손해를 보게 된다.
(2) 로테이트 : 수평을 맞추는 기울기 보정. 당연히 허용된다. 물론 미세한 화질 열화 가능성은 고려해야 한다.
(3) 노출(톤과 콘트라스트) 보정 : 당연히 된다. 레벨, 커브, 브라이트니스, 컨트라스트, 감마 등을 포괄한다. 바디 프리셋에서도 다 되는 것임을 참고하라. 이 역시 강하게 하면 할수록 화질은 나빠진다.(raw 파일로 찍으면 밝기나 콘트라스트를 얼마든지 조절해도 화질열화가 없는 줄 아는 사람도 있는데, 천만의 말씀.)
(4) 색감(RGB 밸런스 및 채도) 조정 : 된다. 색밸런스의 경우 필름 시절에도 컬러필터를 이용해서 해왔던 부분이자, 디지털에서는 화이트밸런스 조정으로 적극 실시하는 부분이므로. 단, 조정의 기본방향은 원래의 색을 그대로 재현하는 쪽으로 맞추는 게 좋을 것이다. 채도의 조절 역시 과거에는 필름 제품의 선택을 통해 해왔던 부분으로 이제 와서 안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
2. 찍히는 장면 속에 원래 없었던 것을 사진 속에서 없애는 것 : 원래 장면에는 없는데 촬영 시의 문제점, 장비의 문제점 때문에 나타난 것을 없애는 것이다. 원고의 오타를 교정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보면 되므로 얼마든지 해도 된다.
(1) 먼지 제거 : 해도 되는 게 아니라 해야 된다. 다른 건 몰라도 먼지 만큼은 무조건 지우는 게 옳다고 본다. 그러나 꽤 귀찮은 일이므로 가능하다면 렌즈와 바디를 청결히 유지하는 것이 더 편하다.
(2) 노이즈 리덕션 : 당연히 된다. 더구나 요즘은 날이 갈수록 고ISO 노이즈 문제를 기술적으로 개선하고 있는 추세가 아닌가. 단, 노이즈 리덕션을 강하게 할수록 선예도는 반비례해서 떨어진다는 사실은 감안하라. 참고로 흑백필름 시절에는 일부러 노이즈 많은 제품을 써서 거친 질감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이는 흑백사진 자체만큼이나 '사실재현'과는 거리가 있는 일이지만 사진계 고유의 관용이 베풀어지는 부분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렇게 본다면 일부러 노이즈를 살짝 추가하는 것 역시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3) 적목현상 교정 : 안될 리가 없다. 그런데 소프트웨어의 자동기능들은 신통치 않고 일일이 수동으로 교정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므로 카메라의 적목감소 기능을 잊지 말고 활용하는 편이 훨씬 편하다.(수동 교정 시에는 버닝 기능을 쓰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4) 색수차와 비네팅의 제거 : 당연히 된다. 하지만 색수차 제거와 달리 비네팅 제거는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어색해지거나 계조가 무너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 역시 자동 비네팅 제거 기능보다는 수작업으로 닷징을 하는 편이 나은 듯하다. 비네팅의 경우는 오히려 만드는 쪽을 따져봐야 할 듯한데, 일부러 생기게 찍는 정도야 또 하나의 관용이겠지만 포토샵으로 강렬한 비네팅 효과를 주는 것은 애매한 부분이다. 크롭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지, 사진답지 못하다고 해야 할지.
(5) 플레어(고스트) 제거 : 된다. 보통은 제거가 힘들겠지만, 하늘 한가운데 살짝 나왔다든지 하는 정도라면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크롭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물론 그렇게 하면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강렬한 햇볕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생기게 하거나 방치하기도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둘 것. 같은 맥락에서 플래쉬 촬영시 렌즈나 후드의 그늘이 졌다거나 찍히는 사람의 손이 들어갔다거나 하는 부분 역시 제거는 불가능할 것이고 가능할 경우 크롭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다.
(6) 렌즈 왜곡(배럴/핀쿠션 디스토션)의 교정 : 고스트와 마찬가지로 교정하고 싶으면 하고 놔두고 싶으면 놔두면 된다. 육안으로는 없던 현상이 장비 문제로 인해 나타난 것이므로 늘 교정을 하는 게 좋을 것도 같지만, 그럼 어안렌즈는 뭔가. 예를 들어 포트레이트에서의 핀쿠션같은 경우는 대체로 놔두는 편이 나을 것이고, 직선이 포함된 기록사진에서의 배럴은 교정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3. 허용가능한 그밖의 것들
(1) 샤프니스 : 허용된다. 우선 바디설정에서 샤프니스 정도를 조정할 수 있으므로 위 1.에 해당하기도 하거니와, 리사이즈를 하면 샤프니스가 감소하기 때문에 원래대로 되살리는 차원에서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원래 찍은 사진보다 더 샤프하게 하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선예도가 더 높은 렌즈를 썼다면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유에서 블러, 소프튼 역시 허용된다. 한편 초점이 나가거나 내 손이 흔들리거나 셔터속도가 늦어서 대상이 움직이게 나온 것은 샤프니스를 아무리 줘도 개선되지 않으므로 혼동할 일은 아니다. 물론 샤프니스를 주면 줄수록 화질은 거칠어진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2) 흑백 변환 : 색감조정보다 훨씬 적극적인 변환일텐데, 사실 흑백이야말로 '사실과 다르게 찍는 사진'의 대명사일 테지만 우리가 워낙 익숙해져있기도 하고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변환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으므로 조작이라고 탓할 사람은 없다. 그냥 그레이스케일로 바꾸는 것뿐 아니라 색분해를 해서 바꾸는 것(채널 믹서 기능)도 물론 허용된다. 이는 흑백필름 시절부터 컬러필터를 이용해서 종종 써오던 방법이다. 같은 이유에서 세피아 등 듀오톤으로의 변환이나 새터레이션을 낮추기만 하는 변환도 허용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단, 새터레이션 감소 정도는 실시 여부를 밝혀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
(3) 텍스트 삽입 : 이 역시 가공 사실과 의도가 명확하므로 탓할 이유가 없으며, 이를 두고 후보정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진지한 사진가들은 사진 안에 텍스트를 삽입하지 않긴 한다.
4. 애매한 것들
(1) 원근(퍼스펙티브)의 교정 : 몇몇 프로그램에는 이런 기능도 마련되어있는데, 약간 애매한 부분이긴 하다. 틸트 렌즈나 벨로우즈가 달린 중대형 카메라를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해도 될 듯하지만, 육안으로도 기울어져보이는 것을 전혀 안 기울어지게 만드는 것 또한 그렇긴 하다. 찍고 돌아서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육안으로는 얼마나 기울어졌었는지 기억하기 힘들다는 것도 문제고. 역시 관건은 촬영의도일 것이다. "그 건물은 이렇게 생겼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사진이라면 교정하는 게 맞다고 본다. 사람들의 관심은 건물의 '실제' 모양새에 있지 사진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2) 피부를 곱게 하기 위한 약간의 리터칭 : 원칙적으로 이것은 안된다. 사진에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살며시 넘어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잡티나 점을 약간 제거하는 것도 안된다고 해야 할까? 대부분 이런 작업은 포트레이트 사진에서 할 것이고, 포트레이트는 기본적으로 찍어서 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받는 사람이 좋다는데 사진가의 원칙만 고집하고 있을 것인가? 각자 알아서 선택할 부분이 될 것 같다. 단, 하기로 했다면 스스로 편집사진(내지는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의 중간)이라고 인정하고 제한적으로 실시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사실은 필름 시절부터도 이런 작업을 해오긴 했다.
5. 해서는 안되는 것들 : 애매한 부분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분석논리로 접근할 영역이 아니라 미학 내지 윤리로 접근할 영역이다. 반복하지만 여기까지 허용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진이 아니라 미술/일러스트레이션/CG 작업으로 분류해야 옳을 것이다. 오해 마시라.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단지 번지수가 다르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런 종류의 작업을 원한다면 아무 부담 갖지 말고 하시라. 그러나 통상적인 의미의 사진가로 불리기까지 원하지는 마시라.
(1) 촬영용 특수필터 수준의 효과를 소프트웨어적으로 구사하는 것(포토샵의 '강력한' 필터들, 기타 각종 소프트웨어의 이펙트들)은 가장 애매한 부분이지만, 나는 "사진가라면 양쪽 다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크로스, 포기(foggy)는 물론 중첩효과 등 피사체의 모양 자체에 아주 확실한 변화를 주는 촬영용 특수필터들을 쓰는 것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각종 이펙트를 주는 것 만큼이나 사진이라는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다.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필터는 원래의 색과 형상을 변형하지 않는 한에서, 그리고 자연광에 의한 변화를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만 구사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2) 대상의 원래 형상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안된다. 포토샵의 리퀴파이 기능과 합성이 대표적이다. 잘 하면 재판을 받을 수도 있는 문제다. 촬영 시의 다중노출이나 연속발광 기법은 그럼 뭐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대개 대상의 위치를 조금 변경하는 수준이지 형상 자체를 바꾸거나 찍을 때 전혀 없던 피사체를 다른 데서 갖다붙이는 것과는 다르다. 물론 그 이상의 '강력한' 다중노출이나 사진합성 작업이 컴퓨터가 발명되기도 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건 아는가? 괜히 수선을 피워대는 일부 사진계 인사들만 제외하면 예나 지금이나 어느 누구도 사진과 그런 작품들을 혼동하지 않는다는 거.
(3) 대상의 색 일부를 확연히 바꾸는 것도 안된다. 전체적으로 색감조정을 하거나 흑백/듀오톤으로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예컨대 하얀 하늘을 붉게 바꿔놓고 낮이 아니라 해질 때 찍었다고 하는 것은 빨간색 꽃을 노랗게 바꿔놓고 노란 꽃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거짓말이다. 아무 말도 안해도 역시 거짓말이다.
(4) 조금 다른 범주지만, 사실을 왜곡하는 촬영시의 연출도 물론 금물이다. 애당초 연출인 포트레이트, 스튜디오 사진과 달리 다큐사진을 찍으면서 왜곡성 연출을 하는 것 역시 재판 받을 거리다. 누군가의 특징을 포착하는 것과 누군가의 특징에 관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애들도 구분할 수 있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다만 왜곡성 연출과 왜곡성이 아닌 연출은 확실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리처드 올세니우스(前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부장)는 [디지털 흑백사진을 잘 만드는 비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널리스트의 경우, 포토샵 도구를 잘못 사용하면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 순수예술 사진가들은 화가와 마찬가지로 이런 강력한 이미지 도구들을 사용하는 데 훨씬 관대하다." 후보정의 허용정도가 사진의 분야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나 역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보도사진과 모델사진과 생태사진에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쪽이다.
요즘도 필름으로 찍은 후 코닥이나 후지가 제시하는 표준 현상·인화법 그대로만 작업한다는 사람도 있는 반면 여전히 안셀 아담스 식의 고단수 복합 프로세스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되 어느 한도 이상의 선(보정이 아닌 합성, 조작)만 넘지 않는다면 서로 티격태격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안셀 아담스의 명언은 이렇다. "필름은 악보요, 프린트는 연주다."
[출처] 디지털 사진 후보정의 원칙과 기준|작성자 유랑단자